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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雲吉山
    컬 렉 션 2021. 9. 19. 07:32

    양평 운길산에 가을이 짙어지고 있다.

    며칠 전, 마재를 찾았다가 운길산을 먼 곳에서 바라다만 보고 왔다.

    이른 가을의 운길산을 못 오른 것이 못내 아쉽다.

    운길산은 추억의 산이면서 앞서 간 여러 先人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병주 선생도 그 분들 중의 하나다.

    이병주 선생을 운길산을 무척 아끼고 좋아했다.

    수종사에서 운길산 정상 오르는 길을 특히 좋아했다.

    선생은 운길산에 관한 글도 많이 남겼다.

    1980년대 월간 '山' 잡지에 실렸던 선생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 글을 이제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게 아쉽다.

    운길산은 인근 마재를 향리로 둔 茶山 정약용 선생의 산이기도 하다.

    선생은 어릴 적부터 운길산을 많이 올랐었고, 그에 관한 글도 더러 남겼다.

    강진에서의 18년 유배생활 중에서도 운길산을 잊지 못했으리라.

    다산 선생이 남긴 운길산에 관한 글 중에 '秋興'이라는 시가 있다.

    雲吉山前黃葉飛

    昭陽江北早鴻歸

    '운길산 기슭에 누른 잎 흩날리고

    소양강 북쪽에 철 이른 기러기 돌아오네...'

    가을의 흥취를 담은 그 시의 한 구절인데,

    전반적으로는 읽으면 읽을 수록 시의 분위기가 사뭇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가을의 흥취하고는 딴 판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울적함이 묻어나는 시다. 나만 그런가.

    선생은 깊어가는 가을 속에 뭔가를 결정치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운길산이 있는 고향, 마재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있다.

    그게 하필 가을 날이다.

    끝 구절은 그래서 이렇게 맺고 있다.

    世間休退誠能事

    半被人牽半自遠

    '세속에서 물러남이 진실로 좋으나

    절반은 남에 의해, 절반은 내가 어겼네'

    쾌적하면서도 한편으로 한 모퉁이에 스산함을 안겨주는 가을 날이다.

    그래서일까, 선생의 이 시를 읽으니 좀 울적해 지기도 한다.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참으로 짧은 것이라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기도 하면서 그러하다.

    조만간 가을 운길산을 찾아 茶山의 체취를 더듬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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