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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校은사의 옛 사진들볼 거 리 2021. 11. 15. 13:48
나로서는 범상하지 않은 일들이 며칠사이 생겨나고 있다.
며칠 전에는 황망한 한 죽음을 목도하더니,
오늘은 옛 고교시절의 은사가 몇 장의 옛 사진으로 느닷없이 나에게 나타나신다.
양재인 선생님. 고등학교 때 국어와 古文을 가르치시던 은사다.
우리들은 선생님 대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큰 풍채에 시커멓고 무뚝뚝한 용모 탓도 있겠지만,
워낙 과묵하셨다. 손바닥이 과장을 좀 보태 솥뚜껑 만 하셔서 뭘 잘못해
선생님 앞에 서면 주눅이 들곤했다.
우리들은 그런 선생님에게 '양상군자'라는 짓굳은 별명을 지어 드리고 숨어서 키득거리곤 했다.
선생님의 사진은 안방 책상 정리를 하다 나왔다. 셀로판 봉투에 정성스레 넣어진 흑백사진들이었는데,
선생님의 젊었을 적 이 사진을 왜 내가 갖고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사진들에서 선생님은 무척 젊다.
단기 4290년 3월 30일이라는 글짜가 새겨진 사진은 졸업사진인 것 같다.
선생님은 경북사대 국어과를 나오셨는데, 졸업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또 한장의 사진은 4292년 3월에 찍은 것으로, 馬高 1-H라고 적혀있고 선생님은 학생들 사이에 앉아있다. 그러니까 이 사진은 대학졸업 2년 후에 나의 모교인 마산고에 부임해 찍은 것이다.
4292년에 1학년이었다면 나보다 8년 위로 기수로 치면 21회를 선생님은 가르친 것이다.
그 외의 사진은 경남의 무슨 국민학교 졸업생들의 사진들인데,
아마도 선생님은 마고로 부임하기 전 국민학교에 잠시 계셨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나와 선생님을 졸업 30주년 때 한 차례 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니 선생님에 관한 소식은 여태껏 알 수가 없었다.
오늘 이 사진들을 접하고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어떤 블로거가 선생님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고교선배인 것 같은데, 이 선배는 매년 스승의 날 때 마산 석전동에 정년퇴임해 계시는
선생님을 찾아 뵙고 약주를 대접했었다는 얘기들과 함께
선생님이 2015년 7월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선배는 선생님을 추억하면서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약주를 드시면 술자리에서
陶淵明의 시를 꼭 읊었다면서 그 시를 올리고 있다.
結蘆材人境 而無車馬喧 ... 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사람들이 사는 곳에 초가집을 짓고 살아도 수레소리 말소리는 없고 ...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뽑아들고 멀리 남산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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