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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볼 거 리 2021. 10. 25. 20:46
내 집 거실엔 보기에 두 개의 종교가 공존하는 듯 합니다. 가톨릭의 표상인 십자가 예수와 성모마리아 상이 있고, 그 맞은 편엔 불교의 관음보살이 앉아있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가 걸려져 서로를 바라다 보고있습니다.
내 신앙의 깊이에 대해 나 스스로 가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가톨릭입니다. 그러니 좀 이상하다할 것이지만, 물론 그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 내 집 거실의 '관음보살도'를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게 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불교미술의 정수로 단연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가 꼽혀집니다.
어제 일짜 조선일보에 그 '수월관음도'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작품 한 점이 올려져 눈을 황홀케 했습니다. 현존하는 고려 '수월관음도'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답다는 일본 사가현 가라쓰시(市) 가가미진자(鏡神社)에 존치돼 있는 '수월관음도'입니다.
굳이 신앙을 연결시키거나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불교미술의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화려하면서도 간결단순한 색채감은 정말 부드럽고 아늑함을 느끼게 해주는 발군의 작품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수월관음도' 한 점이 있습니다. 오래 전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손으로 그려 채색한 게 아니고 목판에 전각과 서각으로 그려진 목판본을 뜬 것입니다.
저의 '수월관음도'는 서각의 명인이자 인간문화재인 木牛 조정훈(趙丁勳; 68) 선생의 작품입니다. 조정훈 선생은 서각과 목판각 판본제작에 능한 刻手로, 근 40년 째 전래의 방법에다 자신의 창의성을 더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서각과 목판으로 재현해 내고 있는 전통문화의 계승자입니다.
선생은 해인사 고려대장경의 인쇄본인 무구정강대다라니경을 목판에 판각하신 분으로, 사찰의 현판이나 주련(柱聯). 기문(記文) 등 불교에 관련된 작품을 많이 만들었기에 그만큼 불교신앙이 깊은 분입니다.
선생의 '수월관음도'도 그런 신앙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수월관음도'는 당연히 선생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선생과의 인연은 제가 교수신문 편집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던 2013년 경, 우리 전통문화와 관련한 기획기사를 다루면서 선생과 선생의 서각작품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맺게 되었습니다. 저의 '수월관음도'는 그러니까 선생이 저의 기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것이지요.
선생은 그때 저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몇 점의 '수월관음도'를 주면서 주변 분들에게도 드리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6점의 작품 가운데, 제것 한 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제 주변의 지인들에게 나눠 드렸습니다.
저는 그때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문제로 좀 어렵고 혼란스러웠었고, 더구나 불교신자도 아니고 해서 선생의 '수월관음도'에 별다른 관심을 갖질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파주운정에 사시는 선배 분의 집을 방문했는데, 선배 집의 거실에 커다라면서 빛을 발하는 듯한 '수월관음도'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놀라 물었더니, 바로 제가 선배에게 준 그 '수월관음도'였습니다. 그걸 보고 집으로 돌아 와 어디 구석에 쳐박아 놓았던 '수월관음도'를 표구를 했고, 그걸 집 거실에 걸었습니다.
그게 2015년입니다. 그때 당시 저는 정말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아 마음고생이 아주 심했을 때였는데, '수월관음도'를 거실에 걸 당시의 심경은 어떤 경우이든 '우환(憂患)'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이 강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수월관음도'는 결국 나의 소망이 담긴 표상같은 것이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예수와 성모마리아에다 관음보살까지에 매달리고 싶었던 게 저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저의 '수월관음도'가 조선일보에 나온, 일본 가가미진자의 것과 비교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 가가미진자의 그 '수월관음도'보다 제 집 거실에 걸려있는 '수월관음도'에 훨씬 마음이 갑니다.
물론 제것이이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와 함께 작품적인 측면에서 흑백의 단순하면서도 여백의 미가 돋보인다는 것, 그리고 불교를 잘 모르지만, 관음보살이 뭔가 대자대비의 빛을 중생들에게 은근히 발하고있는 듯한 모습이 저로서는 좋다는 것입니다.
저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가톨릭신자입니다. 제 신앙의 깊이가 그리 깊지는 않다는 나름의 자책감은 항상 갖고 있습니다. 거실에 예수와 성모마리아 상을 두고 있으면서, 맞은 편에 '수월관음도'를 걸어놓고 서로 마주 보고 있게하는 저의 처사에 대해 신앙적인 측면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불교를 믿지는 않습니다만,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굳이 불교를 배척할 이유가 저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저의 집 거실의 그런 분위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때가 많습니다.
두 종교가 서로 마주보며 서로를 감싸주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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