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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기념일
    村 學 究 2011. 1. 12. 09:40

    30년을 넘게 살았는데도,

    매년 이 날이면 전전긍긍해 한다.

    아직도 뭘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른다.

    남들처럼 하면 욕은 안 듣겠지 해도,

    막상 그렇게 하려면 마누라가 손사래를 친다.

     

    지난 해가 30주년이었다.

    소위 '銀婚'이다.

    작년 1월 12일, 그날 뭘 해줬던가.

    소고기 국밥을 손수 끓였다.

    대파와 무, 양파를 성성 썰어넣고,

    콩나물과 마늘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인 소고기국.

    마누라는 맛있다면서 만족해 했다.

     

    한 해가 지나고 또 찾아온 결혼 기념일.

    뭘 할까, 혹은 뭘 해줄까. 묻기도 쑥스럽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도 거시기하다.

    아이들과 같이 밥이나 먹자.

    안 그래도 작은 아이가 일로 고생을 하니,

    그런 자리나마 마련해 위로나 해주자.

    엊저녁 전화로 그런 생각을 얘기했더니,

    아이고, 아이들이 시간이 있을까 한다.

    그렇다. 큰 아이는 토.일요일 빼고는 시간이 없고,

    작은 아이는 야간 근무라 저녁에 시간을 낼 수가 더더욱 어렵다.

    언제 한번 맞춰보자. 단, 결혼 기념일이라는 것을 고리로 걸자.

     

    그 걸로 대충 넘기기가 아쉽다.

    맛있는 케잌을 하나 장만해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먹자.

    아내는 싫다고 했다.

    지금 배가 불러 죽겠다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케잌을 당장 저녁에 먹을 것도 아닌데,

    지금 배 부른 것으로 왜 질색을 할까.

     

    할 수 없다.

    저녁에 또 소고기국이나 끓이자. 마누라가 좋아하는.

    대파와 무, 양파를 성성 썰어넣고,

    콩나물과 마늘, 고추가루를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이자.

    이번에는 부드러운 고사리까지 넣자. 국물이 담뿍해질 것이다.

    31년 전 눈오던 날,

    그 때나 지금이나 추운 겨울 날이다.

    뜨끈하고 얼큰하고 시원한 소고기국이 당기는 날이다.

    같이 후후 불면서 땀흘리며 먹는 것,

    그 것도 늘그막의 결혼 기념일에 제격 아닌가.

     

    그 날은 몹씨 추웠다.

    눈도 많이 내려 길이고 뭐고 깡깡 얼어붙은 날,

    새벽에 머리를 '빨았다.'

    작취머성 상태에서 차가운 물에

    머리를 담그고 나니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1호선 전철을 타고 부천서 광화문까지.

    지금은 헐어 없어진, 시청 뒷편의 '프레스 센터'

     

    결혼날이다.

    식장에 도착해도 술이 깨질 않는다.

    어떻게 식이 진행됐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생각은 또렷했다.

    '해 치우고 말자'

    10.26때 김 재규가 한 말이다.

    12.12사태가 나고 암울했던 시절이다.

    나라의 앞날도, 나의 앞날도 그에 연계돼

    어떻게 될지 모를 시절이었다.

    그러니 결혼이고 뭐고 무덤덤했다.

     

    결혼을 그런 식으로 했다.  아니 '해 치운' 것이다.

    새벽 5시에 찬물에 '빤' 머리가 온전할리 있겠는가.

    머리털이 도시 죽을 줄 모르고 부풀어 올라있었다.

    그날의 그 몰골이 담긴 사진앨범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Un Sospiro - Franz Lis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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