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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을 넘게 살았는데도,
매년 이 날이면 전전긍긍해 한다.
아직도 뭘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른다.
남들처럼 하면 욕은 안 듣겠지 해도,
막상 그렇게 하려면 마누라가 손사래를 친다.
지난 해가 30주년이었다.
소위 '銀婚'이다.
작년 1월 12일, 그날 뭘 해줬던가.
소고기 국밥을 손수 끓였다.
대파와 무, 양파를 성성 썰어넣고,
콩나물과 마늘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인 소고기국.
마누라는 맛있다면서 만족해 했다.
한 해가 지나고 또 찾아온 결혼 기념일.
뭘 할까, 혹은 뭘 해줄까. 묻기도 쑥스럽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도 거시기하다.
아이들과 같이 밥이나 먹자.
안 그래도 작은 아이가 일로 고생을 하니,
그런 자리나마 마련해 위로나 해주자.
엊저녁 전화로 그런 생각을 얘기했더니,
아이고, 아이들이 시간이 있을까 한다.
그렇다. 큰 아이는 토.일요일 빼고는 시간이 없고,
작은 아이는 야간 근무라 저녁에 시간을 낼 수가 더더욱 어렵다.
언제 한번 맞춰보자. 단, 결혼 기념일이라는 것을 고리로 걸자.
그 걸로 대충 넘기기가 아쉽다.
맛있는 케잌을 하나 장만해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먹자.
아내는 싫다고 했다.
지금 배가 불러 죽겠다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케잌을 당장 저녁에 먹을 것도 아닌데,
지금 배 부른 것으로 왜 질색을 할까.
할 수 없다.
저녁에 또 소고기국이나 끓이자. 마누라가 좋아하는.
대파와 무, 양파를 성성 썰어넣고,
콩나물과 마늘, 고추가루를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이자.
이번에는 부드러운 고사리까지 넣자. 국물이 담뿍해질 것이다.
31년 전 눈오던 날,
그 때나 지금이나 추운 겨울 날이다.
뜨끈하고 얼큰하고 시원한 소고기국이 당기는 날이다.
같이 후후 불면서 땀흘리며 먹는 것,
그 것도 늘그막의 결혼 기념일에 제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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