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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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ous Blue Raincoat'misce. 2020. 5. 16. 17:12
호수공원을 걷고 있었다. 꾸무적한 하늘이 이따금씩 실비를 흩뿌리고 있는 호수 길이다. 어느 한적한 길의 벤치에 눈에 익은 사람이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다. 글 쓰는 그 사람이다. 연필로만 글을 쓴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걸 타이틀로 한 책을 냈었고, 나는 그 책을 보았었지. 벤치 앞을 지나치면서 나는 그에게 눈길을 주었지만, 그는 멀리 호수만 물끄러미 바라다 보고 있다. 그 지점에서 내 호주머니 속 스마트폰에서 흘러 나오는 레너드 코헨의 'famous blue raincoat.' 나는 이 노래가 그의 귀에 들려지기를 바랬다. 그는 스쳐 지나가는 이 노래는 듣고 있었을까. 'The last time we saw you, you looked so much older Your famous blue rainc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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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 주misce. 2020. 5. 6. 10:17
찾던 묵주가 나왔다. 가톨릭 영세를 1979년 12월, 결혼을 앞두고 받았다. 그 때 처 할머님이 영세를 축하하며 주신 묵주다. 할머님이 뜨개질로 손수 짠 털실주머니에 담겨져 있는 오래 된 묵주다. 할머님은 "항상 이것을 지니고 다녀라"고 하셨다. 나는 그 당부에 따르지 않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신앙은 나에겐 필요할 때만 찾고 구하는 일종의 도구였다. '냉담'도 수시로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 묵주는 사라져 버렸다. 사라져 버린 것도 몰랐다. 2006년 견진 받을 때 잠시 '이용'한 이후 잊고 살았으니까. 지난 3월 이 묵주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럴 일이 있었다. 찾아 보았다. 하지만 찾아지지가 않았다.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졌으나 나오지 않았다. 다른 묵주는 몇몇 있었다. 결국 그들 중 하나의 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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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 클로버misce. 2020. 4. 29. 08:20
매일 걷는 산책 길은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거의 없다. 어쩌다 드문 드문 지나치는 몇몇이 있을 뿐이다. 그 분들은 대개 대곡 역의 이른 전철을 타기위한 사람들이다. 오늘도 그랬다. 그런데 오늘은 나처럼 길을 오가는 한 사람을 만났다. 산책 나온 것 같은데, 여인이다.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쓴 젊은 여성이다. 두번 마주쳤을 때 눈 인사를 주고 받았던가, 아닌가. 세번 마주치려 했을 때, 그 여인은 길섶에 주저앉아 뭔가를 보고 있었다. 내가 길을 돌아올 때까지도 그 여인은 길섶에 주저앉아 있었다. 마침내 그 여인을 지나치려는데, 그 여인이 일어서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뭔가를 건넨다. 네잎 클로버였다. "가지세요." 나는 엉겁결에 받으며 한 마디 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길을 걸으며 뒤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