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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反지성주의'와 '에그헤드(Egghead)'
    misce. 2022. 5. 11. 12:15

    윤석열 대통령의 10일 취임사의 한 대목을 듣고 좀 뜨끔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관념과 행태에 물든 정치인들일 것이고 권력에 부화뇌동하는,

    이른바 지성인,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자들이 아닐까 싶다.
     
    "국가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게 '反지성주의'라는 것,

    그리고 그 상대적이고 유사한 개념, 이를테면 과학과 진실을 전제로 한

    지성주의와 합리주의의 의미까지를 강조한 것이다.

    사실 지성과 지성인, 지성주의는 그 개념이 그리 구체적이고 간단하지가 않다.

    그걸 보고듣기에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쾌도난마적으로 언급한 것인데,

    그로써 정치적인 측면을 포함해 우리나라의 지성과 지성인, 지성주의 등에 대한 논의가

    새삼스럽게 촉발되지 않을까하는 전망이 나온다.
     
    '에그헤드(Egghead)'라는 용어가 있다.

    1950년대 초반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앞둔 캠페인에서 리처드 닉슨 당시 공화당 부통령후보가

    민주당의 애들레이 스티븐슨 대통령 후보를 겉만 번지르르한 엘리트주의자(elitist)로 비판하면서

    그의 대머리 용모에 빗대 희화화 해 일컬었던 말로,

    그 무렵 역사학자인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에 의해 이 말은

    지성의 모습을 한 사이비 지성인을 일컫는 용어로 회자돼 왔다. 
    말하자면 '사이비 지식인이 곧 지성인의 최대의 적이라는 경멸을 담은 표현인데,

    물론 이때도 지성과 반지성, 지식과 反지식, 혹은 半지식을 둘러싸고 논쟁이 많았다.

    지성인의 최대의 적은 이도저도 아닌 얄팍한 지식으로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부화뇌동을 일삼는

    半知識人, 혹은 '類似(pseudo)지식인'이라는 희화적인 얘기도 이때 나왔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나온 反지성주의가 일반론적 차원의 언급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윤 대통령이 지적한 반지성의 전형을 '에그헤드'에 연계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반지성주의를 운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어떤 대상을 염두에 두고 했을 것이다. 그게 누구일까는 이 글을 읽는 각자의 생각에 맡기지만,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운운의 대목으로 유추해 보면

    그게 누구인가를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로서는 '에그헤드'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건,

    김병익 선생이 1974년에 쓴 '知性과 反知性'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물론 김 선생은 호프스태터의 역저인

    <미국인 생활 속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에서 그 말을 인용해 그 책에 쓴 것이다.

    오늘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반지성주의와 관련한 대목에서 문득 그 용어가 생각이 났고,

    그래서 책장을 뒤져 찾았더니 그 책이 용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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