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치(龍齒)'라는 게 있다. 한문 그대로 용의 이빨, 영어로는 dragon teeth다.
6월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달이라, 유달리 전쟁이 많이 생각나는 달이기도 하다. 전쟁은 직접 못 겪어봤고 또 못 봤기 때문에, 나의 전쟁에 관한 기억은 영화 속의 전쟁이다. 개인적으로 전쟁영화 중에 가장 기억나는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다. 열 번 이상은 본 것같다.
첫 장면이 압권이다. 오마하 해변에서의 상륙작전,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첫날, 즉 D-day 장면이다. 내리 쏟아지는 총탄과 포화 속에 해변과 바다는, 말 그대로 血海屍邊이 된다. 쏟아지는 총탄과 포탄 속의 피비릿내 나는 전장, 그리고 아귀다툼의 비명과 신음. 지옥이 따로 없다.
이 상륙전 장면에서 시선을 끄는 물체가 있다. 해변 곳곳에 설치된 시커먼 삼각지주형의 설치물들이다. 얼른 봐도 그게 무엇인지 짐작은 간다. 상륙하는 함정을 저지하고자 설치해 놓은 장애물이라는 것을.
그 것때문이었을 것이다. 상륙정이 해변 깊숙히 닿지 못한 채, 병사들이 엉거주춤 바닷물로 뛰어 내리면서 바로 총탄에 맞아 죽어나가는것이.
이 설치물이 바로 용 아가리 속의 흉칙한 이빨을 뜻하는 '용치'다. 용의 이빨이 있는 아가리로 들어올 자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아마도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것이다. 이름을 알고 다시 영화장면을 돌이켜보니 새삼 전율이 느껴진다. 용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은 곧 죽음의 행렬일 것인데. 그렇게들 속수무책으로 들어가는 병사들의 심정들이 어땠을까 하는.
(오마하 해변에 조성해 놓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물의 한 부분인 '용치')
우리의 서해 북단 백령도에도 용치가 있다. 1992년 여름 이 무렵 백령도엘 가 용치를 봤다. 백령도의 용치는 오마하 해변의 그것과는 다른 형체였다. 그러니까 용치는 포괄적으로 그 형체가 여러가지다. 정사각형에서부터 피라미드 또는 삼각지주형까지 각양각색이다.
(백령도의 '용치')
그 때 지하시설을 포함해 여러 군시설을 둘러봤는데, 용치에 대해 "콘크리트 밑밭침에 쇠막대를 60-70도 경사로 꽂아, 적군함이 접안하지 못하게 해 아군이 응사할 시간을 벌어주는 침투방지시설"이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때 그 용치가 아직도 백령도에 있는지 궁금하다. 문재인 정권 때 굴욕적인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군사시설 철거 조치로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