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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대급 '술꾼(Functioning Alchoholics) 8명사람 2022. 9. 27. 15:11
세계의 역사적인 인물들 가운데 역대급 '술꾼'을 꼽으라면 누구일까. 어제 한 해외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들 명단을 꼽았는데 모두 8명으로 이 사이트는 이들을 '기능적인 알콜중독자(Functioning Alchoholics)로 타이틀을 달았다.
알렉산더 대왕, 소크라테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 경, 칼 마르크스, 영국의 엘리자베스 왕대비(엘리자베스 2세 여왕 어머니), 윈스턴 처칠, 빈센트 반 고흐,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동양인은 한 사람도 없으니, 아마도 서방인 위주로 선정한 것 같다.
이 사이트는 이들 8명을 '기능적인 알콜중독자(functioning alchoholics)'로 명명하면서 역대급 '술꾼'들로 선정했다. 이 말이 좀 애매한데, 아마도 역사적으로 위업을 남긴 그들의 술이 곧 자신이 한 일에 연계된 것이라는, 그래서 알콜중독자가 됐다는 차원에서 그런 식으로 명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이트는 그와 관련해 이들의 술에 얽힌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술이 그가 이룩한 위대한 성취를 능가했던 술꾼이었다. 말하자면 그의 업적 대부분이 술이 취한 상태에서 이뤄낸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술에 취한 분노로 그와 가장 가까웠던 친구를 죽였으며, 기원전 330년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페르시아 궁전을 불 태운 것도 술에 취한 난동에 의한 것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32세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것도 과도한 알콜 섭취로 인한 말라리아 감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소크라테스는 매일 제자 등과 갖게되는 심포지움 등에서 술을 접했으며, 밤새 마시는 일이 거의 일상적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술을 많이 마셨지만, 결코 취한 것처럼 보여지지 않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그의 숭배자들과 자주 주연을 가졌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시대 마시는 물은 너무 비위생적인 것이라, 발효되고 증류된 음료를 마시는 것이 더 안전해 대부분 술들을 많이 마셨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프랭클린은 특히 다른 사람들보다 술을 즐겼으며 이런 말을 남겼다. "맥주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는 살아있는 증거이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낭만주의 시인 중 한 명이었던 영국의 바이런 경은 돈을 많이 쓰고 술 마시는 파티를 열심히 챙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해골 모양의 자신의 컵에 술을 따라 마셨고, 술과 관련해 이런 말을 남겼다. "합리적인 사람은 반드시 취한다. 인생의 최고는 도취일 뿐이다."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는 그의 사상적인 파트너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유럽을 가로질러가며 술을 마시며 정치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마르크스는 1844년에 만나 평생의 동반자가 된 엘겔스와 10일 동안 함께 맥주에 절은 채 '공산주의 선언'과 '다스 캐피탈(자본론)'의 초안을 마련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왕대비(Queen Elizabeth The Queen Mother)는 정오에 칵테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식사 때 뷰 클리쿼트 두 잔을 마시며 하루를 끝낼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2차대전 중 런던을 떠나는 것을 거부한 그녀는 버킹엄 궁전에서 주연을 열었고, 궁정 와인 저장실의 포도주를 참석자들에게 마시게 해 기를 살리게 했다. 101세까지 살았던 여왕의 어머니는 "어떤 작은 것(술) 없이는 모든 업무를 끝낼 수 없었다"는 말을 남겼다. 그녀의 수행원들은 그녀의 마차에 항상 진 한 병이 있는지를 매일 확인해야 했다.
윈스턴 처칠의 매머드급 음주는 쿠바, 인도, 수단과 남아프리카 등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면서 다져진 것이다. 그는 조니 워커 언더락스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이는 인도에서 물이 거의 입에 맞지 않는 탓에 생긴 습관이었고, 스카치, 샴페인, 하이볼 몇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처칠의 음주량과 그 폭에 대해서는 전기 작가들 사이에 약간의 논쟁이 있지만 처칠 자신도 "나는 술이 내게서 빼낸 것보다 더 많은 술을 빼냈다"는 말을 함으로써 술이 그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했다.
1886년부터 1888년까지 파리에 있는 동안, 빈센트 반 고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와인과 압생트를 많이 마셨다. 그는 심지어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써서 "너무 과하게 한 결과 거의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후 알코올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고, 섭취량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반 고흐는 그의 유명한 그림인 'Absinthe Cafe Table'에서 그가 좋아하는 술인 압생트를 그리고 있다.
헤밍웨이는 15세 때 캔자스시티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부터 술을 즐겼다. 그 후 1차 세계대전 중 유럽에 갔을 때 술로 인한 과격한 행동을 보이곤 했다. 헤밍웨이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셨고, 술에 절은 채 한 세대의 정서적 고통을 담은 책을 썼다. 금주령을 피하기 위해 파리로 이주한 그는 유럽의 술집을 최대한 이용했고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와 포도주를 나눠 마신 것으로도 유명하다. 도피성 음주에 대해 헤밍웨이는 "나는 15살 때부터 술을 마셨고, 술보다 나에게 더 많은 기쁨을 준 것은 거의 없다"고 했다.'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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