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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관에서 사람 만나기
    사람 2019. 4. 5. 09:00

    좀 아는 사람을 만나면 괜히 쑥스러워지는 곳이 있다. 도서관도 그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다. 왜 그럴까 하는 궁리 중에는 역시 나이라는 게 자리잡고 있다. 나이들어 별 하는 짓이 없어 드나드는 곳이 도서관이라는 일종의 자조(自嘲)가 작용한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도서관에서 가끔씩 예전에 알던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어제도 그랬다. 그것도 화장실에서 만났다.

    1990년대 출입처를 같이하던 양반이다. 햇수로 20여년 만이다.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자라는 동업자 의식 속에 가끔 씩은 궁금해 했던 사람이다.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그에 이어지는 얘기들이라야 별 게 있겠는가. 뭘 하고 지내는가. 건강은? 그리고 자식들은 어떻고 저떻고 하는 등의 신변잡사에 관한 것이다. 자판기에서 차를 한 잔 사길래 점심이나 같이할 요량으로 그러자 했더니, 먹을 것을 싸서 온다고 해서 몇 마디 더 나누고는 헤어졌다. 오전 시간은 그 사람 만나면서 거의 다 날렸다.

    시간 아깝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 잡아 자리에 앉았으나, 이상하게도 마음이 싱숭맹숭해지면서 일이 잘 안 잡힌다. 책도 눈에 잘 안 들어오고 끄적거리던 글도 더 이상 나아가질 않는다. 왜 이럴까 싶지만 그 또한 일말의 자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뭐랄까, 드러내기 싫은 나의 치부를 들켜버렸을 때의 혼란감이고나 할까. 내가 이렇다면 나와 조우하게 되는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한 후배를 만났다. 신문사를 나와 2000년대 초 언론유관 단체에서 같이들 일할 때 만난 후배다. 학교와 언론사 등은 나와 다르다. 다만 내가 나이가 많으니 그런 사이가 됐다. 그 후배와 처음 만난 건 2, 3년 전이다. 그 후 어쩌다 한번 씩 나를 만나러 도서관으로 오는 후배다. 처음 만났을 때 그 후배가 퍽 당황해하던 기억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 뭔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을 하다 들켜버린 듯한 표정과 언행이었다. 58년 개띠인 후배는 '아주' 자유스러워 보였다.

    말에 거리낌이 없었고 생활 자체도 그랬다.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지낸다고 했다. 밥은 고시원 인근의 대학구내 식당에서 떼운다고 했다. 뭔가 이유는 있을 터이지만 그건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도서관 앞 돼지고기 찌게 집에서 점심을 겸해 막걸리를 두 세번 마시기도 하면서 좀 가까워졌다. 후배가 도서관을 찾는 이유가 뭣인지 나름 어렴풋이 느껴져 왔다. 이래저래 생각대로 안 되는 제반 현실 상황에서 그나마 익숙하고 마음을 다 잡아 붙일 데가 도서관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지 않나 싶다. 러시아어를 전공한 후배는 그 나라 정치사상 연구로 학위까지 땄다. 책도 몇 권 냈고, 미국 대학의 방문연구원도 했다. 물론 국내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있지 않고 그냥 놀고 지낸다.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지내며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 하면서 그 틈새에 도서관으로 나온다.

    그런 처지이니 도서관에서 언필칭 선배인 나를 만나기도 저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후배나 나나 피장파장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후배 외에도 또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이 몇몇 더 있다. 모두 다 그렇고 그런 처지의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도서관은 책을 보고 공부하는 곳이지만, 이래저래 인생학교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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