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선배 중에 진 머시기라는 분이 있다.
서울공대를 나와 SK건설 부사장을 지냈다.
이 선배가 최근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그룹 전시회였는데, 사진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진 선배와는 대학 1학년 때 재경학우회 일을 하면서
교류를 가진 바 있느나, 그 후에는 잘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 사진전시회를 하면서 모종의 부탁을
다른 선배를 통해 해오는 바람에 다시 만나게 됐다.
물론 그 선배를 매개로 그 전에도 몇 차례 술 자리를 한 적이 있다.
어제, 진 선배가 뱅뱅사거리에 있는 횟집에서 저녁을 냈다.
팔목을 다친 채 나왔길래 웬일인가 했다.
응, 좀 다쳤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대답이다.
그런데 그 게 대수롭지 않은 상처가 아니었다.
진 선배는 회사를 그만 둔 후 매진하고 있는 일이 있다.
사진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돈 많은 사람이 하는 '好事'라고 여길 수 있는 취미생활이다.
여유를 주체하지 못해 고가의 장비로 폼이나 잡는
그런 짓거리일 것이란 선입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진 선배의 사진은 그런 게 아니었다.
팔목에 생긴 상처도 혼자서 그저께 새벽,
진부령 부근의 이끼계곡을 이끼를 사진에 담고자 기어 오르다 생긴 것이라는 것.
이야기는 결국 사진으로 이어지면서,
진 선배의 사진에 얽힌 얘기들이 나왔다.
한 컷의 사진을 찍기 위해 안 돌아 다닌 곳이 없다는 것인데,
그 것 때문에 가정불화(?)까지 생길 지경이라는 엄살도 피운다.
주로 산과 섬을 다니는데 철저한 현장주의를 고수하는 성격이라
난관에 부딪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설악산 공룡능선을 20킬로가 넘는 사진장비를 메고 넘은 얘기는
솔직히 듣기에 구라가 좀 가미된 듯 했지만 어쨌든 압권이었다.
덕적도 얘기도 재미있었다.
한 컷을 기다리다 몇 날을 술만 먹고 왔다는 것인데,
새벽에 마시는 술이 그리 맛있었다나...
진 선배는 이번 전시회에 산 사진을 내 놓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사진반 출신 6명의 공동전인데,
나의 솔직한 관점으로는 진 선배의 사진이 제일 좋았다.
그 것은 이날 술 자리에서 완벽하게 일치하는 의견들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청춘을 걸며 보낸 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은퇴나 노후라는 말이 좀 어패가 있지만,
어쨌든 인생에 단계가 있음은 인정해야 한다.
각 단계가 모두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후반에서
그 단계를 잘 가꾸고 영위해 나가는 일이다.
결국 한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 단계에서 뭣을 하고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에 달려있는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