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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의 할머니 觀相, 그 틈새의 무엇즐거운 세상 2019. 7. 13. 22:53
경의선 전철 안을 왔다갔다 하며 관상을 보시는 할머니 한 분을 보았다. 하는 행태로 보아 어찌보면 관상은 뒷전이고 구걸을 일삼는 분으로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런 선입관을 거두고 좀 관심을 갖고 들어보면 그게 아니다. 청산유수 같은 언변에다 보는 관점이 옛스러우면서 좀 독특하다.
그저께 집으로 오려고 홍대입구 역에서 탔다가 보게 된 그 할머니에게서 느낀 것이다. 몇몇 자리를 거쳐 오더니 내 앞에 섰다. 내 앞에 오기까지 거친 몇 사람들은 거부감이 좀 있었다. 할머니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람들마다의 앞에서 말을 늘어 놓는다. 팔난칠고가 나오고 조자룡이 나오고 관운장이 나오고 김유신이 나온다. 초년과 중년 운이 어떻고 말년 운이 어떻고 하며 늘어놓는 말이 무슨 판소리 대목 같다.
내 앞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 할머니를 똑바로 바라다 보았다. "거참, 답답한 상이로구나." 나를 보고 대뜸 하시는 말씀이다. 그 말에 나는 싱긋이 웃었다. 그랬더니 또 거참, 거참 한다. 그러면서 말이 이어지는데,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좀 괜찮은 운을 안고 태어 난 관상인데, 어떤 변고로 살아오면서 그게 변했다. 나이 먹어가는 지금에도 변하고 있는데, 그게 어디서 그칠지 모를 일이다 운운. 나는 또 싱긋이 웃었다.
그랬더니 할머니 왈, "그래, 그거지, 그거. 그리 웃고 사시오." 그런다. 내 앞에선 그거로 끝이다. 앞의 사람들이 그러길래 나도 천 원짜리 한 장을 드렸더니 할머니는 감지덕지 하신다. 내 앞을 떠나 다른 자리로 가면서 할머니는 두어 차례 뒤돌아 본다. 그러면서 나를 보고 손사래를 치며 "웃고 살어, 그저 웃고 살어" 했다. 그 말에 무언지 이상하게 뭔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웃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인생이니 철학이니 하는 게 별 것인가.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여지는 어디에든 있다. 그게 저자 바닥이든 지하철이든 이렇듯 도처에서 나를 깨우치게 하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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