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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철에서의 이상한 是非
    세상사는 이야기 2019. 8. 9. 17:44

    경의선 전철, 내가 앉은 맞은 편 '임산부'석에 할머니는 아닌, 하지만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앉았다. 전철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얼마 쯤 가는데 뭔가 조그조근 다투는 소리가 난다. 임산부 석 아주머니와 그 옆에 앉은 40대로 보이는 한 남자와의 다툼소리다. 뭔 일인가고 귀 기울여 들어보니 임산부 자리 때문이다. 그 남자가 임산부 석에 앉은 아주머니를 힐난한 것이다. 왜 그 자리에 앉느냐는 것인데, 그 시비에 아주머니는 좀 당황했던 모양이다. 임산부가 없고 비워있길래 앉은 것인데, 그게 그리 타박할 일인가고 허둥지둥 나름 항변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따지듯 아주머니를 계속 타박하면서, 전철 안의 시선들이 그 쪽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남자의 말인즉 임산부가 없어 자리가 비었더라도 그 자리는 임산부가 아니면 절대 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임산부가 없더라도 그냥 비워둔 채로 놔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좀 생뚱맞는 것이었다. 갑자기 민주주의가 나오고 민주사회를 꺼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민주사회의 민주시민이라면 최소한 그 정도의 도덕심은 갖춰야 한다는 논리조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좀 어처구니 없는 시비와 관련해 다른 승객들의 시선은 그 남자의 언행을 못마땅해 하는 쪽이었다.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세가 더 등등해지고 있었다. 급기야는 두 팔을 흔들어가며 무슨 말을 꺼내는데, 이번에는 정의사회 구현이 어떻고 저떻고 하다가 적폐까지를 꺼내면서 청산을 강조한다. 말하는 폼이 좀 닳아먹은 정치가 이상이다. 거기쯤에서 승객들 중에 그 남자를 나무라는 수근거림이 나온다. 아주머니도 만만치 않았다. 좀 질린 듯 하면서도 같잖은 표정으로, 그래도 꿋꿋하게 대꾸를 한다. 그 얼마 후 아주머니는 합정 역에서 내려 버렸다.

    그 아주머니가 내리고 그 후 그 자리에 누가 앉겠는가. 전철 안이 많이 복잡해졌는데도 그냥 비어진 상태로 가고 그 남자는 의기양양(?)해 하면서 그 자리를 무슨 신주처럼 여기는 표정인데, 보기에 좀 우습다. 이 시비 광경을 쭉 지켜 본 역시 어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그 자리 곁에 서더니 앉지는 않고 좀 무거워 보이는 검은 가방을 그 자리에 던지듯 놓았다. 순식간의 일이다. 그것을 본 남자의 표정이 또 좀 험악해졌다. 그 표정을 보고는 아주머니가 화들짝 가방을 들었다. 마침 그때 내리려는 모양이었다. 내리면서 아주머니가 잽싸게 그 남자를 보고 한 소리를 던졌다. "미친 놈!"

    남자는 분명 그 말을 들었을 터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부라린 눈으로 전철 안을 한 바퀴 휘 둘러본다. 그 순간 나와 눈이 부닥쳤다. 장난이 치고 싶었다. 나는 애써 훨씬 더 부라린 눈의 표정으로 그 남자를 째려 봤다. 여차하면 멱살을 잡을 결의가 담겼을 만큼 강하게 쏘아 봤다. 그 남자의 시선이 갑자기 쳐지며 떨어졌다. 꼬랑지를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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