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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더운 날, '당산동 악마'를 떠 올리며
    세상사는 이야기 2019. 8. 11. 07:06

    저녁무렵에도 비가 계속 내리니 마음이 불안하고 무겁다.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그럴만한 이유는 있다. 잇따르는 이런 저런 우환 탓이다. 하지만 말할 수는 없고 내 속으로만 태워야 하는 우환이다.

    당산동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타려는 사람들이 많아 번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하지만 그 번잡한 가운데서도 자리에 앉았다. 운전기사 옆 자리인데, 내가 버스에 올라서자 마자 앉았던 분이 일어난 것이다.

    마음은 내내 불안하다. 문득 묵주기도를 바치자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묵주기도 5단을 들으며 마음을 다스려 보려 한 것이다. 하지만 들어도 좀체 그게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다. 옛 가톨릭 성가인 그레고리안 찬트(Gregorian Chants)를 들었다.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어둡다.

    바로 그 때 어떤 여자가 바로 내 앞에 섰다. 교통카드를 카드기에 대고는 돌아섰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본다. 나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내 시선 속에서 여자의 얼굴은 사람의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인데, 그 얼굴 형체가 무슨 액체마냥 수시로 이글거리며 나를 훑듯이 바라 보았다.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여자의 얼굴은 나의 영혼을 파고드는듯 했다. 그 여자의 눈은 나를 숨도 쉴 수 없겠금 옴짝 못하게 하는 파란 연기같은 빛을 내 눈에 쏘아대고 있었다.

    그러더니 더 흉측한 표정으로 팔을 들어 나를 직시한다. 그리고는 뭔가 외쳐댄다. 뭐라뭐라 하는데 그건 사람의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말이 무엇을 뜻하지는 느껴졌다. 지금 하고있는 그 짓을 당장 멈추어라!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어폰을 낀채 듣고있는 그레고리안 찬트 경청과 기도를 당장 멈추어라는 것이다. 나는 두려움에 어쩔 수가 없었다. 곁의 사람들에게 살려달라며 도움을 청했다. 말도 하고 손짓 발짓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요청에 하나같이 무관한 표정들이었다.

    그게 얼마간의 시간인지는 모르겠다. 문득 버스에서 뛰어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려면 그 여자를 밀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 두 팔을 내밀며 일어서려는데, 그 여자의 얼굴이 나를 덮는 듯 했다. 그 여자의 눈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푸른 빛이 감도는 안광(眼光)이었다. 악마였다. 나에게 악마가 덮친 것이다. 그때까지도 그레고리안 찬트는 내 귀에서 들려지고 있었다. 악마라고 생각하며 기도문을 외자 그레고리안 찬트가 갑자기 더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능곡역에서 내렸다. 버스 문을 내릴 때 다시 한번 나를 쏘아 본다. 눈에서는 여전히 안광을 뿜고 있었다. 비 내리는 정류장에 그 여자, 아니 그 악마가 내려섰다. 버스가 출발하려는데, 그 여자가 다시 돌아서더니 나를 바라본다. 흐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악마의 미소였다. 그러더니 내리는 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나는 비 오는 날 당산동 정류장에서 일산가는 버스를 타질 않는다. 나는 확신한다. 악마는 분명히 우리들 곁에 알게 모르게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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