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姜萬吉교수의 '역사가의 시간'에서 짚어보는 馬山의 작은 역사writings 2019. 8. 14. 17:52
오늘 도서관에서 우연히 접한 '역사가의 시간'이라는 책은 역사학자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의 자서전이다. 근 10년 전에 나온 이 책이 오늘 눈에 띈 것은, 나름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랬다. 3년 전에 쓴 책에서 자료 부족으로 고심하던 어떤 부분을 강 교수가 바로 잡아 설명해주고 있으니 그렇다는 말이다. 강 교수는 나의 마산고등학교 18년 선배의, 마산 출신 분이다.
그런 관계로 이 책에는 나에게 익숙한 지명과 이름이 많이 나온다. 완월국민학교를 나오신 강 교수는 1945년 당시 6년 학제의 마산중학교에 입학했다가 학제 변경으로 3년 학제의 마산고등학교(11회)를 나왔다. 내가 고심 끝에 대략적인 줄거리로 글을 마무리 지은, 당시 마산중학교에서 일어났던 몇 가지 사건의 와중에 거기를 다녔던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인공기 계양 사건'이다. 좌우대립이 극심하던 해방공간에서 좌익들에 의해 마산중학교 교정에 '인공기'가 계양돼 검거 선풍이 일어나는 등 마산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다. 강 교수는 이 사건이 중학교 3학년 때인 1948년에 일어난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내가 쓴 책의 글에서는 시점 조차를 혼동하고 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아침에 등교를 했더니, 교문 옆 국기게양대에 처음 보는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 깃발이 북한이 새로 만든 '인공기'였다는 것이다. 깃발을 올려놓고 게양대 줄을 끊어 버린 것 같아 게양대를 눕히기 전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등교하는 학생들이 모두 그 깃발을 보게되는, 말하자면 '중인화시리의 인공기'가 되었다는 것인데, 내 글에서는 그 깃발을 아침 일찍 목격한 허드렛 일을 하는 소사가 급히 경찰과 군 등 공안당국에 신고를 한 후 즉각 게양대에 올라가 깃발을 끌어 내렸다고 적었으니 내가 잘못 알고 쓴 것이다.
이 사건으로 당시 마산에 주둔하던 15연대 부연대장으로, '백두산 호랑이'로 유명한 김종원 중령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좌익활동 엄벌을 강조하면서 반공을 골자로 한 내용으로 일장 훈시를 한 것으로 나는 적었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된 것으로, 김종원이 마산중학교에서 연설을 한 것은 김종원이 부연대장으로 부임한 직후이며, 그 시기는 여순반란사건 직전이었던 것으로 강 교수는 기억하고 있다. 또 이 사건으로 마산중학교 교사 일곱명이 당국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으며, 사건이 있은 뒤부터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10여 명씩 조를 짜서 교대로 매일 밤 학교에서 숙직교사와 함께 밤을 새며 경비를 섰다고 강 교수는 적고 있는데, 이 또한 처음 듣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것은, 당시 이 사건에 교사들과 함께 학생들이 연루되었다고 내가 쓴 대목인데, 강 교수는 학생들의 연루에 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강 교수는 학생들이 연루된 사건으로는 일제 강점기 말 무렵의 학교에서 일어난 '독서회 그룹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데, 아마 나는 이 사건과 '인공기 게양 사건'을 혼동해 써지 않았나 싶다. 강 교수는 '독서회 그룹 사건'이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5년 전반기쯤 마산중학교의 독서모임인 '독서회 그룹'의 핵심 멤버들이 연합군에 국내정보를 제공하려한 혐의로 벌어진 사건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을 주도한 학생들이 일경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독서회 그룹 멤버들의 '불온서적' 탐독과 독회로 인한 사건으로 잘못 적고 있다.
강 교수로서 의미있는 대목은 2007년 경인가, 마산중학교에서 당시의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지금의 마산고등학교 교정에 기념탑을 세웠는데, 그 탑의 명문을 강 교수가 썼다는 사실이다. 이 명문에 '독서회 그룹 사건'에 연루된 핵심 멤버들의 이름과 활동이 적혀있다. 5기생 김희구, 조우식과 7기생 김학득, 강순중, 8기생 박기병, 박후식, 감영재, 조이섭, 강정중 등이 그들로, 이들 가운데는 '마중독립단'을 결사해 항일운동을 펼쳤다고 한다. 이들 핵심 멤버들 가운데, 김희구는 모진 고문 끝에 옥사했고 '마중독립단'은 1944년 7월에 발각돼 13개월 동안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다 8.15해방을 맞았다고 강 교수는 적고있다. 그러나 나는 책의 글을 쓰는 과정에서 옥사한 김희구를 빠뜨리고 있다. 강 교수의 이 글로 미루어 아마도 나는 '인공기 게양 사건'과 '독서회 그룹 사건' '마중독립단 사건'을 혼동해 썼던 것이 거의 확실해진 것이다.
강 교수의 고향 마산에서의 소년과 학생시절은 자서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강 교수에 대해서는 좌파역사학자라며 보수진영에서 비판을 받고있는 학자라는 사실 외에 별로 아는 게 없다. 아무튼 강 교수의 이 책을 접했으니 이 책을 통해 고향 마산의 그 시절과 학교선배인 강 교수를 좀 더 알아가는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강만길 교수의 1946년 마산 완월국민학교 졸업사진)
'writing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산 '3.15의거 때 겪은 '귀신' (0) 2019.08.13 GP에 나타난 '양공주 귀신' (0) 2019.08.12 이스크라 (0) 2019.06.07 굿 투어리즘 (0) 2019.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