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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 '3.15의거 때 겪은 '귀신'
    writings 2019. 8. 13. 12:59

    어릴 적에 마산에서 살았습니다. 남성동 113번지의 집이었는데, 마산의 소문난 부자인 '부자'의 땅에 지은 여러 집들 가운데 한 집이었지요. 낡고 오래 된 그 집에는 창고가 하나 있었습니다. 일제시대 때 만든 창고였는데, 어떤 용도로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어둡고 음침해서 부모님도 그렇고 저도 잘 들어가려 하질 않았습니다. 귀신 나온다는 소문 때문에 더더욱 무서워하던 그런 창고였지요.

    마산하면 '3.15의거'입니다. 부정선거에 항의해 마산시민이 일떠선 사건으로, 이승만 정권을 하야시킨 계기가 됐지요. 1960'3.15의거'가 일어난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많이 죽고 다쳐 민심이 흉흉했습니다. 밤이 되면 전등불도 나가 도시 전체가 암흑의 공간이 되면서 사람들은 가족끼리라도 서로 지키려고 한 방에 모여앉아 바깥의 이런 저런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했습니다.

    그 날 저녁에도 대규모 시위가 일어 났습니다. 경찰들은 총으로 시위대를 저지하려고 발포를 했습니다. 어두워지자 총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습니다. 우리 집은 4거리 한 켠에 있었는데, 집 앞으로 조그만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면서 총소리가 굉장히 가깝게 들렸습니다. 흡사 우리 집 앞에서 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밥 하는 누나가 있었는데(그 때는 식모라고들 했지요), 그 누나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살짝 내다 봤더니, 우리 집 앞 그 웅덩이에 경찰 서너 명이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 4거리 쪽으로 총을 쏘고있는 것입니다. 누나가 그 광경을 보고 방에 들어와서는 거의 숨도 못 쉴 정도로 벌벌 떨면서 그 얘기를 하자 우리들은 극심한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지요. 총소리는 밤 내내 들렸습니다.

    자정을 좀 넘길 무렵 총소리가 멈췄습니다. 총소리가 멎고 조용해지면서 공포심은 더욱 밀려 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무슨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극심한 고통 속의 신음이었습니다. 신음 중에 뭔가 애원하는듯한 말 소리가 들렸습니다. "살려주이소, 살려주이소." 그 소리는 경찰들이 총을 쏘고있던 그 웅덩이에서 들리는듯 했습니다. 누나는 용감했습니다. 다시 문을 살짝 열고 밖, 그러니까 웅덩이 쪽을 몰래 엿 보았습니다. 거기엔 경찰 몇몇이 뉘여진 어떤 시커먼 물체같은 것을 둘러싸고 웅성웅성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물체는 바로 다름아닌 총에 맞아 중상을 입은 학생이었습니다. 교복을 입고있는 학생이었지요. 그 학생은 피투성이로 죽어가면서 경찰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누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문밖으로 나가 경찰들 뒤에까지 가 그 학생의 모습을 봤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극도의 공포심에서 잠도 자질 못했습니다. 그 학생이 제발 죽지 않았으면 하고 빌기도 했습니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그 학생은 병원에 옮겨지지도 못한 채 결국 무참하게 죽었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웅덩이 쪽으로 가보니, 그 학생이 흘린 피가 그때까지도 홍건하게 고인 채 웅덩이 여기저기에 있었습니다.

    그 날 밤이 었습니다. 가족들 모두 변소가기도 무서워 요강을 방 앞 툇마루에 놓고 일을 해결했습니다. 그 날은 어떻게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한 며칠 뜬 눈 속에 지낸 피로가 밀려왔던 모양입니다. 자다가 갑자기 눈이 떠졌습니다. 소변이 마려웠던 것이지요. 방문을 열면 바로 요강이 있는데, 나가기가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엉덩이를 까고 요강에 앉으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그 창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오줌을 쌀 지경인데 그냥 이부자리에 쌀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방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요강에 조심스럽게 앉았습니다. 창고가 바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 그런데 항상 잠겨있던 창고의 문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머리칼이 쭈뼛 섰습니다. 안 보려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신음같은 소리였습니다. 눈이 절로 떠졌습니다. 창고 앞에 어떤 무엇이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의 모습이었는데, 피 투성이의 모습으로 "살려 주이소, 살려 주이소"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대로 뒤로 발랑 나자빠졌습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한 30분 동안 혼절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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