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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 10주기라는데...
    사람 2019. 8. 19. 14:42

     

    18일 어제가 DJ의 기일이라는 것을 사실 잘 몰랐다. 뉴스 보도에 그의 얼굴이 그냥 스치듯 보이길래 고인이 된 사람이 왜 또 저리 나오는가고 생각했는데, 오늘 국회도서관을 오면서 길 건너 편 신호등 쪽에 10주기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있는 것을 보고서야 그의 기일이 어제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 대통령을 지냈고 이런 저런 많은 평가를 받는 분이지만, 그냥 저냥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의 입장에서는 죽고나면 그렇게 잊히게 마련인가고 생각하면 그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서는 고인을 너무 잊고 있었다는 점에서 인지상정상으로라도 좀 송구스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는 DJ와 그리 큰 인연은 없다. 다만 직업상 두 번 만난 적은 있다. 현직 시절의 일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고인에게는 역시 송구스럽지만 나는 DJ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은 것 같다. 정치적인 견해 차이까지를 운위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다만 내가 커 오면서 주변의 DJ에 대한 거부감들이 나에겐 익숙해져 있었고 그게 몸에 배였던 탓이 아닌가 싶다. 입장을 바꾸어 DJ 본인 입장에서는 평생을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힌 이른바 '레드 컴플렉스'일 수도 있겠다.

     

    처음 DJ를 만난 건 1996년 1월이었을 것이다. 14대 대통령선거에 떨어진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에서 돌아왔을 무렵으로, 그가 입장을 번복해 정계 복귀의 의지를 밝혔을 때다. 부산신문 서울주재 정치데스크들과의 간담회를 마련한 자리에서 그를 만났다. 정계 복귀와 관련한 여론 청취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날 여럿이들 만났는데, 자리가 그리 곱게 마무리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좀 당돌했던 것 이다. 사실 나는 DJ의 정치 복귀를 그리 반기지 않았다. '대통령 병'의 한 증세로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던진 질문은 어찌보면 좀 엉뚱한 것이다. 대략의 요지는 이렇다. "프랑수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죽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테랑 대통령의 죽음은 지금 세기, 전 세계적으로 거물정치인들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으로 저는 생각한다."

    사실 DJ를 만나기 하루 전 미테랑 대통령이 죽었다. 그래서 그게 퍼떡 생각이나 물은 것인데, 그 질문 속에는 그가 다시 입장을 번복하고 정치에 돌아온 것을 어떤 의미에서 좀 비꼬고자하는 측면이 있었다. DJ는 내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좀 당황해 하던 기억이 있다. 곁의 참모들도 수근거렸다. 답변 마련이 어찌보면 애매했을 것이다. 그러다 DJ는 바로 곁의 누군가와 귀속말을 주고 받더니 이내 자세를 고쳐 잡고 한 말씀했다.

    "어제 별세 소식을 듣고 바로 조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미테랑 대통령 측근과의 통화를 통해 조의를 전했습니다."

    그 말로 끝이었다. 내가 맨 먼저 던진 첫 질문이 그랬으니, 간담회가 DJ가 바라던대로 진행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피상적인 질문 몇 개와 답변을 주고 받다가 끝났다. 내가 미운 털이 박혔다. 간담회 장을 나오는데, 박지원이 내 뒤에서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김 부장, 우리가 곧 청와대를 접수할 겁니다."

    DJ는 이듬 해 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청와대를 접수했으니, 박지원이 한 말이 그대로 들어 맞았다. 박지원의 맥을 집는 예지력이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DJ가 대통령이 된 것은 그 특유의 대통령을 하겠다는 욕구와 정치력이 그만큼 강한데다, 당시 국내의 정치공학적인 이합집산이 결과였다고 나는 보는데, 그 또한 DJ의 정치력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두번 째는 부산 본사에서 부장을 하고 있을 때인 1997년 10월이다.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에서 단독 인터뷰를 했다. 물론 이회창 등 다른 대선후보들과도 했지만, 신문사 내부 여론조사상 DJ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을 때 가진 회견이다.

    표정이 밝고 여유가 묻어나는 게 일년 전하고는 많이 달랐다. 부산신문이니 부산과 경남의 현안에 질문이 집중됐기에 질문상 특별히 기억에 남는 그의 언질이나 의미있는 상황의 순간은 없었다. 다만 인터뷰 말미에 내가 미테랑 질문을 했던 기자라고 밝히자, DJ가 "아, 그래요"하며 손사래를 치고 뭔가 재미있어 하는 표정으로 웃던 모습은 기억에 남아있다. 인터뷰 자리에 박지원이 배석했다면 다시 한 마디를 했을 것인데, 그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좀 아쉽다. DJ와의 그 때 인터뷰 당시 찍은 사진이, 그 후 DJ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후 좀 이상한 얘기꺼리로 신문사에 나돌았다. 정치부장이 DJ 쪽이었다니 뭐니 하는 나를 둘러싼 일종의 구설수였다. DJ가 웃고있고, 나 또한 프로필이지만 DJ에 화답하듯 웃고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이듬 해인 1998년 초 나는 신문사를 나왔다.

     

    그 후 백수생활을 하면서 대통령으로서의 DJ를 그렇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는 않았다. 그에 대해 이런 저런 평가가 많지만 나는 사실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그의 집권시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았다. 그건 아직까지도 견지하고 있다. 노무현까지를 이른바 좌파정권 10년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기간 동안에도 그랬고 그 후에도 여전히 백수로 지내며 나름 그런대로 살아오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을 겪고 보면서는 어떤 묘한 격세지감을 느낀다. 같은 좌파정권이지만 그래도 DJ가 훨씬 양반이었고 잘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간혹 그가 그리울 때가 있는 것이다.

    그가 간지 벌써 10년이라니 세월은 정말 유수같이 빠르다. 1주기에 그를 떠 올리며 다시 한번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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