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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의 종전 6개월 - '1945(Six Months in 1945)' by Michael Dobbs컬 렉 션 2019. 8. 21. 12:48
올 여름 폭서와 함께 한 책이다. 재미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재미로 무더위를 넘겼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1945'라는 타이틀의 책인데 원 제목은 'Six Months in 1945'으로,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돕스(Michael Dobbs)가 쓴 역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6개월 간 미국과 영국, 소련이 얄타와 포츠담에서 벌인 외교전을 다룬 책이다. 그러면 누가 떠 오르겠는가. 당연히 그럴 것이다. 루즈벨트와 처칠, 스탈린이다. 이 셋을 일컬어 이른바 '3거두'라고들 하는데, 이들이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저마다 수하에 그들의 외교베테랑들을 거느리고 얄타와 포츠담에서 전후 처리와 배상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된다.
얄타와 포츠담 회담은 결론적으로는 실패로 마무리된다. 패전국 독일을 포함한 폴란드 등 유럽의 분할과 배상금 문제의 합의에 실패한 것이다. 이 실패가 궁극적으로 그 앞으로의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냉전(Cold War)' 시대에 돌입케하는 계기가 된다. 나치독일과 싸우는 동안 미. 소 두 강대국은 동맹을 유지하고 서로 맞지 않는 모든 이견을 덮어둘 수 있었다. 하지만 공통의 적이 무너지는 순간 두 나라는 직접 맞닥뜨리면서 정치적. 이념적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냉전'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고, 그렇게 도달하는 과정을 이 책은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냉전'을 촉발케 한 직접적인 계기는 있다.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지만, 미국이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로써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 소련을 긴장시켜 미. 소 간 핵무기 개발에 경쟁적으로 돌입케 한데서 그 시발점이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냉전'이라는 용어를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이 재일 처음 사용했다는 점이다. 오웰은 1945년 10월 트리뷴(Tribune) 지에 원자력 시대의 대두에 관한 에세이 한편을 기고, 미. 소 간의 대립을 경고하면서 "그 결과는 마치 고대의 노예제 제국만큼이나 끔찍하게 안정적인 새로운 시대이며 '냉전'이라는 영구적 상태로 상징되는 '평화 아닌 평화'일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바로 이 글에서 '냉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작금의 한. 일 간 분쟁이 떠 올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반도의 운명이 얄타와 포츠담 회담에서 결정된 것으로 어릴 적에 배운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인데, 그건 좀 과장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거두'의 이 회담들에서 한반도 문제가 거론되는 대목은 찾기가 거의 어려웠다는 얘기다. 하기야 그 회담들은 미국이 일본과 벌이고 있는 전쟁과는 어떤 의미에서는 연관성이 좀 희박한 측면이 없잖아 있었다는 점과, 그에 더해 그 당시의 조선을 일본의 부속국 때문으로 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지금 한. 일 간 분쟁의 씨앗이 되고있는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은 종전의 상황에서 조선이 연합국의 일원이 아니라 일본의 부속국이라는 정황까지를 포함해 양국 간에 합의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회담 말미에 한반도 문제가 살짝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소련의 대일전 참전문제와 관련해서이다. 소련은 그 당시 이미 사할린과 쿠릴을 먹기로 합의된 상태였는데, 여기에 만주와 한반도까지 넘나보며 대일전 참전을 서두르고 있었고, 일본과의 전쟁에서 피폐해진 미국의 처지로서도 소련의 참전을 바라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소련과 상대적으로 힘의 우위를 갖게되면서 소련의 참전에 소극적으로 변한다. 미국으로서는 이미 얄타와 포츠담에서 스탈린을 정점으로 하는 소련 공산주의자들의 사악함을 충분히 알고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극적인 것' 딱 거기까지였다. 그 때 미국이 원자폭탄의 위력을 과시하면서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막았으면, 한반도의 운명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국가 간의 외교라는 게 흔히들 말하는 '총성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아울러 외교가 무엇이고, 외교를 하는 과정에서 국가이익을 어떻게 다뤄 염두에 둬야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외교관들과 특히 '외교 참사'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강경화 장관이 읽어 봤으면 싶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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