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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구(走狗)'라는 말
    세상사는 이야기 2020. 1. 23. 08:46

    말과 글은 시대를 탄다. 분명 사전적으로 존재하는 말이고 단어이지만, 안 쓰이는 것도 많다. 그러다 시대의 흐름에 요구되면 그런 말과 글이 나타난다. '주구(走狗)'라는 말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주구는 한자 뜻 그대로 달리는 개를 일컫는 단어인데, 개 주인이 시키는 대로 달리는 개다. 그 뜻대로 하자면, 사냥 개가 이에 해당할 것이고 좀 더 넓은 의미로는 앞잡이, 끄나풀 정도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지는 거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그리 자주 쓰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좀 생소한 단어라 할 수 있다. 내가 알기로 이 단어는 예전부터 우리보다는 북한 쪽에서 많이 사용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북한 선전도구의 대남 비방에 많이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남한 정부가 미국의 괴뢰라는 의미로 비방을 할 때 '미제(미 제국주의의 주구'라는 말을 많이 쓴다. 지금도 북한 선전매체는 심심찮게 주구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1970년 대 중반, 북한관련 일을 할 적에 처음 이 단어를 접하면서 좀 생경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북한 인쇄매체는 한자를 병기하지 않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 금방 알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북한의 영자신문인 '평양타임스(Pyongyang Times)'에 주구를 'running dog'로 표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뜻과 한자가 그런 것인지 알게됐다.

    그런데 네이브로 검색을 해 보면 주구의 영문은 'haunting dog'으로 나온다. 의아해서 좀 더 찾아 봤더니, 주구의 중국식 영문 표기가 'running dog'였다. 모든 면에서 북한은 중국에 가깝기 때문에 북한도 중국을 따라 'running dog'로 쓰고 있는 것이구나 하고 이해하고 있다.

    글이 좀 길어졌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근자에 우리 언론이나 사회단체의 구호 등에도 주구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인데 어째 쓰다보니 그렇게 됐다. 이 단어가 어떤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강하게 비방할 때 쓰여진다는 점에서, 이 말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거칠고 험악해지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좌우 이념으로 편 가르기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주구라는 이 말은 상대를 헐뜯고자 함에 있어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말이 좌우 따로 가릴 것 없이 서로들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주 등장하는 게 검찰은 '권력의 주구'이고 언론은 '주구 언론'인데, 좌파와 우파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서로들 상대방을 희롱하면서 비방할 때 번갈아 사용하는 고정메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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