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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요일 아침, 호수공원
    세상사는 이야기 2020. 2. 17. 08:10

    일요일 이른 아침, 호수공원을 가려고 마두 전철역에서 내리려는데 어떤 할머니가 아무도 없는 전철 안에 홀로 앉아 악보집 같은 것을 보며 뭘 이어폰으로 듣고있다. 할머니가 그걸 따라 부르는 것인지 그 소리가 나에게도 또렷히 들린다. 들어보니 가톨릭 성가다. 지나치며 언뜻 악보집 표지를 보았더니 '엠마뉴엘 성가대'라고 적혀있다. 그러니까 그 할머니는 오늘 아침 미사 시간에 부를 성가를 연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할머니가 보고 듣고 부르고 계시는 그 노래가 무슨 성가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전철 역을 나와 호수공원으로 가고 있는데도 그 성가가 계속 내 귀에 들리면서 나를 따라 온다. 웬 일일까.

    호수공원 길을 걸어 가는데, 할머니의 그 성가가 계속 귀에 맴돌면서 그 할머니의 모습도 눈에 아른거린다. 그에 연계해 한 동안 잊고 지냈던 가톨릭 성가가 생각났고 그레고리안 챈트 몇 소절도 입에 웅얼거려진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 장모님 생각이 났다. 음대를 나오신 장모님이 그레고리안 챈트를 전공하셔서 그랬을 것이다. 생각이 계속 이어진다. 가톨릭 신앙에 관한 한 나는 이른바 냉담자다. 2006년 견진성사를 받고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렇게 됐다. 그러니까 신앙을 멀리한지 십여 년이 넘었다. 동네에 있는 능곡성당에서는 그래도 잊지않고 때가 되면 연락을 보낸다. 성사표도 전해주고 새해가 되면 성당 달력도 보내준다. 미안할 따름이다. 이런저런 연결되는 그런 잡상들이 걷는 걸음 속에 계속 이어진다.

    공원 길 어느 지점이었다. 그 지점에 막 도착해 섰는데, 문득 그 자리가 아주 생경해 보인다. 눈을 감아도 걸을 수 있는 낯 익은 공원 길인데 생전 처음 느껴지는 길이다. 왜 그럴까라는 생각과 함께 뭔가 정신이 까마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때 어느 지점에서, 지금 서 있는 여기까지를 어떻게 왔는지를 모르겠다. 뭔가 순식간에 수평이동을 한 기분이다. 그러면서 자꾸 정신이 가라앉으며 주저 앉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뭔가 막연히 두렵기도 하고. 얼마 간을 정신을 가다듬으려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걸으며 주변을 원근을 바꿔가며 살펴본다. 그랬더니 저 멀리 내가 걷기를 시작한 굴다리가 보인다. 그러니까 나는 걷고자했던 코스를 그냥 잘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한 5백미터 거리의 구간을 어떻게 왔는지에 대한 생각이 증발해 버렸던 것이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생각이 많아서였을까.

    간밤엔 비가 내렸다. 아내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그렇게 말했기에 나는 그러려니 하고 여겼다. 오늘 아침 호수공원은 눈이 좀 쌓였고 그런 속에 싸락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다. 간밤에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뀌어 호수공원은 자그마한 설경을 이루고 있다. 설경이라 푸근하지만, 하늘과 대기가 온통 회색 빛이라 전반적으로 좀 무겁다. 수목들은 저마다들 흰 눈을 매달았다. 그러면서도 수목들은 군데군데 푸른 빛을 가졌다. 흰 색과 푸른 색의 콘트라스트가 묘한 안정감을 준다. 어느 나무가지에 새 집이 앙증맞게 달려있다. 나무에 비해 집이 너무 작다. 하지만 포근함을 안긴다. 문득 '트리 하우스'가 떠올려 졌고, 저런 집에 사는 새들이 부러워졌다. 푸드득 하늘을 날다 들어 와 날개를 접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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