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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같은 친구'의 訃音
    obituary 2020. 2. 29. 14:06

    '형같은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 같은 과 동기입니다. 1970년 시골에서 대학 다니러 서울로 올라 왔을 때 나는 그야말로 까까머리 촌놈이었습니다. 30명의 과 동기들과 서로들 인사는 나눴지만, 서울 출신들에 비해 지방에서 온 우리들은 그냥 꿔다 놓은 보리짝 마냥 삐죽삐죽했고 나도 그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낯 선 서울도 그렇지만 서울 말을 구사하는 사람들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요. 학교 앞에 하숙집을 잡았지만, 낯 설고 소외감을 가지기는 거기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그 때 같은 과의 키가 크고 잘 생긴 누군가가 나에게 스스로 다가와 인사를 청했습니다. 서울 출신이었습니다. 아마 서울 올라 와 처음 말을 나눈 서울 사람이었을 겁니다. 휘문고 출신이라고 했는데,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습니다. 그 후 알고 보니 나보다는 2년 위였습니다. 그러니 형 같은 친구였던 셈이지요.

    그 친구는 서울생활을 포함해 이런 저런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많은 걸 가르쳐 줬습니다. 예컨대 명동이라는 곳을 생전 처음 나가 본 것도 그 친구 덕분이었습니다. 카이자호프니 뢰벤브로이 같은 유명 생맥주 집, 그리고 히-파이브인가 하는 그룹사운드가 나와 노래하던 코스모스도 그 친구 따라 처음 가 보았습니다. 그 친구의 고교 때 친구가 노래하는 오 머시기라는 가수로, 그 당시 코스모스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나는 부쩍 가까와졌고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다른 과의 그 친구 고교동기들과도 교유를 키워 나갔습니다. 친구는 활동력이 있어 정경대 회장을 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그 친구가 이리 저리 바쁜 관계로 좀 소원해졌습니다. 그 친구는 ROTC를 했고 나는 3학년 마치고 군대를 가는 바람에 학교에서의 그 친구와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친구를 다시 만난 건 1990년 대 초였습니다. 그 때까지는 그 친구에 관한 얘기는 좀 듣고 있었습니다만, 피차가 바쁜 관계로 서로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동기 중의 누군가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바람에 그게 계기가 돼 그 친구를 만나게 됐는데, 정확히 17년 만이었지요. 그 후로 자주는 아니지만 한 번씩 얼굴은 보고 살아왔습니다. 친구는 사업 쪽으로 나가 나름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0년부터인가는 태국으로 사업장을 확장해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017년 여름인가 친구가 태국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태국에서의 사업을 접고 귀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습니다만, 건강과 관련이 있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대학 동기들끼리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나는 잘 나가지 않습니다만, 어쩌다 작년 8월에 한 번 나가 친구를 보았습니다. 얼굴이 좀 수척해 있었습니다. 어디 아프냐고 물었더니, 싱긋 웃었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의미였겠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 이전, 그러니까 태국생활을 접은 2017년부터 심장 쪽의 이상으로 어려운 투병생활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다른 동기들이 나에게 그런 소식을 전했습니다.

    오늘 새벽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친구가 별세했다는, 친구 아들로부터의 전언이었습니다. 작년 9월인가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몸이 안 좋아 입원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고, 그 희망을 버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게 결국 그 친구와 이승에서의 마지막 주고받은 대화가 되었습니다. 작년 12월에 병세가 궁금해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질 않았습니다. 병세가 깊어져 있었던 것이지요. 새벽에 친구의 부음을 접하고 미명의 하늘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세상이 역병으로 뒤숭숭해져 있는 터라 마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하늘을 보고 빌었습니다. 모든 것 다 털고, 모든 것 다 잊고 훌훌 잘 떠나가시게...

    삼가 고인이 된 친구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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