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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걱 정
    세상사는 이야기 2020. 3. 3. 08:07

    걱정 없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을 달고 사는 게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일 수도 있다. 그러니 걱정은 말하자면 인간 생활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좀 과하게 말해 사람은 걱정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사람과 걱정은 불가분의 관계지만, 걱정을 자신으로부터 드러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럼으로써 걱정에 대한 상대방의 인식이 저마다 달라진다. 나로서는 큰 걱정거리인데 그게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은 일일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반대로의 처지도 생긴다. 그러니 사람들 저마다의 걱정거리는 그들마다의 견지에 따른 것이라는 게 걱정의 수준과 관련한 정답이 아닐까 싶다.

    그런 걱정을 해소하는 방식도 저마다들 다르다. 걱정거리를 오픈시켜 다른 사람들과 터놓고 얘기하면서 그 해결방안을 궁리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혼자서 끙끙대고 앓아가며 그 방법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 가운데 어디에 속할까. 걱정거리의 경우에 따라 아마도 양자를 취사선택하는 처지가 아닐까 싶다. 나의 걱정거리는 번잡스럽다. 다양하고 많다는 것이다. 물론 남들이 봤을 때 말도 안 되는 것도 있고, 나 스스로도 ‘걱정도 팔자’라는 말에 수긍할 때도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걱정도 있다.

    휴일 아침에 산책을 나가기 전 아내와 몇 마디 말을 나눈다. 간밤에 잠이 시원찮았다고 아내는 말한다. 아내의 건강상태는 고만고만하다.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화장실로 급히 간다. 그걸 보고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선지 몇 십분 안에 산책지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걷는다. 얼마 가지 않아 이런 생각이 퍼뜩 든다. 아내가 혹시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혼자서 일을 보다 급성 혈관질환으로 쓰러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 것이다. 안절부절 하기 시작한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 본다. 전화를 받질 않는다. 아내의 그런 처지가 점차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산책이고 뭐고 관두고 길가로 나와 택시를 찾는다. 택시를 막 잡아타고 운전기사더러 집으로 가자하는데, 그 때 아내로부터 전화가 온다. 웬일이냐고 멀쩡하게 묻고있다. 할 말이 없다.

    이런 얘기를 아내에게 얘기하면 무슨 소리가 돌아오겠는가. 아무래도 신경과민에 노이로제 증상이 심한 것 같다. 병원에 가보라고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내가 무슨 말을 하던 나에게는 그것 또한 걱정인 것이다. 이런 경우로 헤아려볼 때 걱정에 대한 나름의 수준이라든가 종류를 스스로 매겨보기도 한다. 나로서 말하자면 걱정에는 이런 종류가 있다. 지속적인 것, 정기적인 것, 그리고 단발적인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경우는 단발성에 속하는 걱정이다. 지속적인 것은 깊은 걱정거리다. 이에는 왜 사는가, 왜 죽는가 하는 다소 철학적인 명제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막연한 것 외에 보다 구체적으로는 예컨대 현재의 제반 경제나 건강상태 등을 감안한 이런 저런 노후의 생활에 대한 것이라든가, 자식들의 생활이나 안위에 관한 것들이다. 정기적인 것은 여유롭지 못한 경제사정과 관련된 게 많다. 거의 매달이 그렇지만, 분수도 모르고 과용했을 경우 날라드는 신용카드 청구서도 그런 정기적인 걱정거리의 하나라고 보면 되겠다.

    이들 가운데 제일 많은 게 단발성의 걱정거리인데, 아무래도 하루하루의 생활에 밀착된 것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위의 예에서 언급했듯이 단발성의 걱정거리는 대부분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게 허다하다. ‘괜한 걱정거리’인 셈이다. 그런데도 마음 씀씀이가 괴로운 이런 걱정거리를 달고 사니, 인생이란 어떤 관점에서 ‘고난의 바다(苦海)’라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면 어쩌겠는가. 사는 게 어차피 생각하기 나름이라고들 하니 저마다들 걱정에 대한 생각들과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궁리하면 저마다들의 해결방안들이 있을 것이다. 마침 어니 젤린스키(Ernie Zelinski)는 걱정에 대해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거리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만 우리가 바꿔 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나는 젤린스키의 생각을 좀 뛰어넘고 싶다. 어차피 걱정 없이 살아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니, 걱정을 그저 살아가는 생각의 한 산물로 마음을 굳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걱정의 결말이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경우가 허다할 것이니, 그 가운데서 즐거움을 찾아가는 지혜를 터득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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