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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르드(Lourdes)
    컬 렉 션 2020. 3. 12. 07:55

    프랑스의 남서부 지역 피레네 산맥 북쪽에 있는 루르드(Lourdes)라는 곳은 나에게는 좀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곳이 성모마리아의 발현지로서 카톨릭의 성지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겪었던 나름의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1982년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 하지만 정상적이지 못했다. 병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유미흉(spontaneous chylothorax)'이라는, 당시로서는 고칠 수가 극히 어려운 거의 불치에 가까운 신생아 질환이었다. 서울대 병원에서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그저 가슴팍에 파이프를 꽂고는 심장에 매일 고이는 림프액을 받아내는 정도였다. 영양공급도 할 수 없는 바람에 아이는 바싹 말라가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였고, 우리들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장인어른이 병원에 오셨다. 물이 담겨진 물병을 건내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랬다. 프랑스의 성모마리아가 발현했다는 루르드에서 가져온 물인데, '기적수'라고 한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여기에 한번 매달려나 보자. 주치의에게 얘기했더니 뭣이라도 해보라고 했다. 굿판이라도 벌여보라며 나에게 던지던 그 때 주치의의 농담이 생각난다. 그날 저녁부터 주사기로 그 물을 아이의 코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아이는 그날 저녁 이후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지금 38살이다.

    또 하나. 장인께서 그 물을 구한 건 장모님 때문이다. 장모님은 1981년인가 골육종에 걸렸다. 피아니스트였던 장모님은 대퇴부의 그 암으로 오른 쪽 다리를 절단한다. 그런 장모님을 살려내기 위해 장인께서는 모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루르드의 그 물 또한 그 과정에서 대한항공 승무원을 통해 구한 것이다. 그러니까 장인께서는 장모님을 위해 구한 그 물을 외손자에게까지 먹인 것이다. 그 물을 먹었던 장모님은 어쨌든 암을 극복했고 구순에 접어든 지금껏 생존해 계신다. 장모님을 구하기로 백방의 노력을 다하셨던 장인 어른은 정작 암을 얻어 세상을 1992년에 뜨셨다.

    이 이야기들이 내가 루르드와 관련해서 겪은 경험담이다. 물론 그 당시와 지금의 나는 신앙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 때와 달리 지금의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른바 '냉담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루르드가 오늘 나에게 다시 다가온다. 5, 6년 전인가, 루르드에서 제작된, 성모 마리아 발현의 모습을 담은 도자기 한 점이 이베이(eBay)에 경매로 떴고, 그걸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밤잠을 살펴가며 지켜보다 그 도자기를 잡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루르드 도자기에서 지난 날 겪었던 놀라운 일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루르드 도자기가 오늘 내 눈에 다시 보여지는 것이다. 그동안 거실 구석 테이블에 약상자들과 함께 아무렇게나 먼지를 덮어쓴 채 뒤섞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 것이다. 조심스레 도자기를 닦았다. 원래의 모습이 살아나고 있었는데, 뭔가 모를 자책감에 가슴이 미어졌다. 성모 마리아가 1858년 루르드의 소녀 베르나데트에게 나타나 하셨던 말을 도자기의 마리아가 나에게 하시는 것 같다.

    "나는 원죄없이 잉태된 자이다(I am the immacurate con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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