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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回想의 北漢山 진달래
    컬 렉 션 2020. 4. 1. 09:14

    봄의 전령인 진달래는 북한산에도 한창이다. 이즈음의 북한산 진달래는 산의 형세에 따라 제각각이다. 활짝 꽃을 피운 것도 있고, 끝물도 있다. 더러는 아직도 꽃을 피울 망울이 봄바람에 팔랑인다. 서북쪽 대서문 쪽에서 오르는 북한산의 진달래는 좀 늦다. 서북사면이라 그런지 이 쪽은 겨울도 유난히 길고 춥다. 진달래도 그런 류다. 그래서인지 여기서 보는 진달래는 좀 갸날픈 느낌을 준다. 화려한 봄의 정취를 더 해주는 꽃이라기 보다, 뭔가 좀 쓸쓸하고 생각에 젖게하는 진달래다.

    노적봉 아래 노적사 길목에 노적교가 있다. 등산로에서 꺽어지는 길목인데, 이 다리는 저만치 먼곳에서 보는 조망이 나름 좋다는 생각이다. 절로 들어가는 길이라 언제 보아도 고즈녁한데 봄날, 이곳을 지나치면서 드문드문 핀 진달래를 보다가 든 생각도 그것이다. 화사하지 않고 좀 갸날픈 진달래라는 느낌. 끝물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게 아니고 뭔가 좀 시들해보이고 더러는 망울인 채인 것도 있다. 말이 될런지는 모르겠으나 '우울한 진달래'라고 해야 하나.

     

     

    시인치고 봄과 진달래를 노래하지 않은 시인들이 있을까. 북한산의 이 쪽 진달래를 보면서 故신동엽 시인이 떠올려 진다. 북한산을 유달리 좋아했던 신동엽은 북한산에 핀 봄의 진달래를 민족의 아픔으로 승화시킨 시인이 아닐까 싶다.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꽃 펴 있고,/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시인이 1959년 3월 조선일보에 게재한 시 '진달래 山川(산천)'의 시작 부분이다. 이 시에선 봄을 노래하거나 진달래를 미화하는 대목이 없다.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꽃 펴 있고,/바위 그늘 밑엔/얼굴 고운 사람 하나/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신동엽은 민족상쟁으로 인한 이름모를 희생을 진달래와 대비시켜 그 아픔을 읋고 있다. 여기서 진달래는 꽃은 꽃이되, 영혼을 위로하는 제물의 꽃, 즉 祭花(제화)다.

    그의 또 다른 시에도 진달래의 형상이 나온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화사한 그의 꽃/山(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1963년 그의 시집 '阿斯女(아사녀)'에 실린 '산에 언덕에'다. 이 시에서 시인은 진달래라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화사한 그의 꽃'으로 진달래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 꽃은 곧, 4.19혁명으로 산화한 영혼들이다.

    시인은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行人아" 라며, 이 산길을 오르는 나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는 주문한다.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바람 비었거든 人情 담을지네..."

    신동엽을 생각하면서 이 산길에 핀 진달래를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울고 간 그의 영혼/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하늘거리는 진달래 사이로 시인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

    노적교를 지나고 중성문과 중흥사지를 거쳐 드문드문 핀 진달래를 보며 이 산길을 곧장 오르면 대남문이다. 이 방면으로 북한산을 오르다보면 대남문은 북한산 주능선을 남북으로 가르는 경계지점이라는 인식을 갖게한다. 올라온 느낌과는 좀 다른 정취를 주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쪽에 핀 진달래는 서북쪽의 것과는 좀 다르다. 풍성하고 화사하다. 대남문에서 위로 대성문을 거쳐 대동문으로 이르는 길의 진달래는 봄기운에 더해 져 마음을 즐겁게 한다.

    북한산 진달래의 정수가 바로 대동문에서 시작된다. 저 아래 우이동까지 이어지는 '진달래 능선'에서 그것을 만끽할 수 있다. 우이동 의암 손병희 선생 묘소까지 4Km 남짓한 10리 길은 진달래 꽃길이다. 진달래 꽃과 더불어 여기서는 북한산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조망이 있다. 북한산의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세 봉우리인 이른바 삼각봉을 계속 보면서 내려간다. 이에 더해 도봉산과 수락, 불암산까지도 한 눈에 들어오는 꽃길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산길인가.

    '진달래 능선'은 이 산길에에 걸맞는 명칭인데 누가 붙였을까. 누가 짓고가 무어 그리 중요할 것인가마는, '진달래 능선'하면 떠올려지는 한 사람이 있다. 소설가인 故이병주다. 산을 좋아한 그는 양평의 운길산과 함께 누구보다도 이 산길을 좋아하고 아겼다. 아마도 내 기억에 1980년대에 이 산길을 노래하며 쓴 글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山(산)' 잡지 등 옛 서적들을 뒤적여보았으나 찾지 못해 게재 못하는 게 아쉽다. 하나 기억나는 게 있다. 이병주는 '진달래 능선'에 별칭을 붙였다. 이름하여 '과부능선'이다. 그가 왜 이 산길을 '과부능선'이라 했는지 그 연유도 알 수 없다. 그의 생전의 박식함과 익살, 유머감각에 미뤄볼 때 필시 무슨 사유가 있었으리라. 아무튼 진달래를 만끽하며 내려가는 이 능선길은 아름답고 즐겁고 유쾌하다.

    북한산은 사시사철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로 다가온다. 봄날에 피고지는 진달래꽃 하나에도 여러 느낌을 안겨주는 산이 북한산이다. 나에게는 회상의 진달래이고 회상의 북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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