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퇴사사람 2020. 4. 6. 09:55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4월 1일부로 조선일보를 퇴사한지를 이 글을 보고 알았다.
신문을 구독하면서도 요 며칠 간 보지를 않았는데, 그 사이에 퇴임을 한 것이다. 아무튼 55년 간을 한 신문사에서 신문언론인으로 있었다니 대단한 기록이다. 지금은 세상이 하도 변하고 어수선해서 잘 모르겠지만, 김 고문이 한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 중의 한 분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김 고문 55년의 신문언론인 생활은 영욕의 세월이었다.
김 고문의 글은 좌파진보 진영에서 수시로 공격을 받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한편으로 보수 쪽은 김 고문의 글을 거든다. 그러니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는 김 고문의 글이 천편일률적으로 보수 쪽 옹호에 있다고 못을 박는 것이다. 시류의 측면에서 김 고문의 글을 그런 식으로 양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김 고문의 글은 쓰고자 하는 것,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소신이 분명하다. 때로는 이게 지나쳐 고집스럽게 보이면서 어느 일방을 거드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김 고문 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대체로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신문기자 50주년을 맞은 2015년 김 고문이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아부 안 해도 되고,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신문기자로 산 게 좋았다."
이 말 속에 그의 신문언론인으로서의 소신과 긍지가 담겨져 있다. 이런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논객은 소통하는 직업이 아니다. 단지 자기의 생각을 얘기할 뿐."
김 고문은 조선일보를 떠나더라도 칼럼은 기고할 것이라고 한다. 신문사에 몸담고 있을 때와 떠났을 때의 처지는 다를 것이다. 자유스러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 고문의 앞으로의 글에 어떤 변화가 추측되기도 한다. 아무튼 기대해 본다.
[조용헌 살롱] [1239] 55년 신문 글쓰기
입력 2020.04.06 03:17
언론이라도 신문과 방송은 기질이 다르다. 방송은 말과 화면발이 좋아야 한다. 신문은 글과 문장력 비중이 높다. 말과 화면발은 최근에 생긴 영향력이지만, 글과 문장력의 파워는 한자 문화권의 유교 국가에서 수천 년 전통을 가지고 있다. 조선조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시험의 합격 여부도 결국 글과 문장이었다. 글쓰기가 되려면 논리와 암기력, 창의성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조의 엘리트는 칼과 창이 아니라 글을 잘 쓰는 문사(文士)였다. 이 문사적 전통을 계승한 현대의 직업이 신문사 논객 아닌가 싶다.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소설가와 신문에 칼럼을 쓰는 논객이 다르다. 소설가는 엿장수요, 칼럼니스트는 참기름 장수에 해당한다. 엿장수는 엿가락을 늘이는 데에서 묘미가 느껴진다. '어떻게 저렇게 늘일 수 있을까' 하고 그 상상력에 감탄한다. 반대로 칼럼은 꽁지, 대가리 다 떼어버리고 요지만 압축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재래시장의 참기름 집에 가서 참깨를 집어넣고 나사를 돌려 압착하는 기계를 볼 때마다 나는 압착의 미학을 감상한다. 압착도 군더더기를 다 떼어버리고 핵심만 추려내는 지성의 힘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참기름 장수가 엿장수와 조우하면 스파크가 튄다. 이야기하다 보면 참기름 장수는 자꾸만 엿장수의 말을 자른다. '결론만 이야기해.' 반대로 엿장수는 '당신은 왜 자꾸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서 자르는 거야' 하고 성질을 낸다.
김대중 고문이 엊그제 조선일보사를 그만뒀다. 1965년에 입사했다고 하니까 장장 55년 동안 기사와 칼럼을 쓴 셈이다. 55년이라니! 한국 신문계가 배출한 대표적 참기름 장수가 아닌가 싶다. 정치권과 청와대의 여러 제안과 자리도 거절했고, 돈 문제로 인한 큰 스캔들도 없었으므로 가능한 55년이었다. 나 같으면 돈과 벼슬에 굴복했을 것 같다. 금전과 벼슬에 걸리지 않고 55년 동안 주야장천 신문 글쓰기만 하는 것도 팔자가 아닐까? 후천적 노력도 작용하기는 하겠지만 이게 노력한다고 다 되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팔자를 뽑아보니까 계(癸) 일주에 묘(卯)가 셋이나 있다. 하나만 있어도 좋은데 셋은 트리플이다. 수재 사주인 것이다. 여기에서 묘(卯)는 문창성(文昌星)이다. 문장과 학문을 상징하는 별이다. 더군다나 이 문창성이 모두 식신(食神)에 해당한다. 문장으로 사회에 자기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만 벼슬운은 약한 팔자다. 이게 다 팔자이고 주님의 섭리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5/2020040501361.html'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가톨릭신자의 단식, 그리고 죽음 (0) 2020.04.28 1974년 吳之湖 선생 내외 (0) 2020.04.23 주역, 계사전(周易, 繫辭下)에 이르기를... (0) 2020.03.31 원로 時調시인 김교한 선생 (0) 2020.03.04 부화뇌동의 面面들 (0) 2020.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