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어느 가톨릭신자의 단식, 그리고 죽음
    사람 2020. 4. 28. 11:01

    나이 지긋하신 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죽었다. 그냥 죽은 게 아니다. 신앙을 토대로 한 신념에 따라 스스로 결정한 단식 끝에 스스로 택한 죽음이다. 보수의 참패로 끝난 4. 15 총선 후 그의 단식과 죽음에 이르게까지의 연유가 반짝 사회적 관심을 끈다 싶었지만, 진보의 환호작약 속에 파묻혀 그냥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귀결돼 가고있는 형국이다. 그가 다녔던 동네 성당을 비롯해 가톨릭 교계에서도 그렇고 특히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흐르고 있는 분위기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냉랭함'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그 분의 죽음이 좀 속된 말로 '쓸데없는 죽음'이 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분의 그런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분이 단식과 죽음을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이 다니는 성당 마당에 천막을 치고 단식에 돌입했을 때, 그 사유를(끝내는 유서가 돼 버렸지만) 분명히 플래카드에 적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으로 나라가 좌경화되고 천주교회 또한 좌경화되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보고있을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한 몸이라도 바쳐 나라와 교회를 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분의 단식은 문재인 정권과 한국 천주교회의 각성을 촉구하고자 돌입했던 것이다. 하지만 교회와 정권은 그에 무관심했고, 결국 87세 고령의 이 분은 20여 일의 단식 끝에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죽음을 막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 분의 의지는 무척 강경한 것이어서 가족들조차도 그 결의를 말리지 못했다. 그 분으로서는 이미 '순교(殉敎)'를 각오한 단식이었다.

    그 분은 4월 24일 세상을 떠났고 장례식도 끝났다. 고인의 시신은 10년 전의 기부 약속에 따라 가톨릭성모병원에 기증됐다. 끝까지 가톨릭 신자로서의 할 일은 다 하고 간 셈이다. 그 분 사후에 다소의 웅성거림은 있었다. 신앙을 바탕으로 한 단식 끝의 죽음이니 순교에 가까운 죽음인데 그렇게 허망하게 보낼 수 있느냐는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가톨릭 교계는 논평은 물론 단 한 마디의 애도도 없었다. 사회적인 시각도 거의 무관심에 가까웠다. 장례식장은 쓸쓸했다고 한다. 특히 고인의 빈소에 신부나 수녀들의 조문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개신교 목사들과 불교 스님들의 조문이 많았다고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고인이 다니던 화곡성당이다. 40년을 다닌, 고인이 아끼고 정성을 다하는 성당이었고, 성당 교우들도 대부분 고인을 알 정도로 성당 및 교우들과의 관계가 친밀했다. 성당을 신축할 때 고인은 수천 만원의 헌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곡성당도 고인이 단식에 들어가면서부터 냉담했다고 한다. 성당 마당에 텐트도 못 치게 했고 플래카드도 못 걸게 했다. 급기야는 성당 마당에서 나가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까지를 냈다고 한다. 성당 주임신부는 고인의 문재인 정권 및 가톨릭 교회 좌경화 비판 등에 반대했다고 한다. 주임신부가 그러니 일반 신자들도 그렇게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40년 된 고인은 하루 아침에 성당에서 냉대받는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 고인에 대해 그나마 애도와 경의를 표한 측은 보수단체들이다. 3일장이 5일장으로 늘어난 것도 이들 단체들 때문이다.

    이쯤에서 이 분의 성함 등을 밝혀본다. 강남수라는 분으로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가톨릭이 모태신앙으로, 생애를 마감한 올해 87세까지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경찰에 투신해 평생의 직업으로 삼았다. 고인의 공산주의를 배척하는 반공정신은 일선에서의 그의 오랜 경찰 생활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고인의 이런 죽음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반응은 아직까지는 없다. 그냥 무관심으로 일관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여론의 반응을 살펴 본 후 입장을 밝힐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냥 무관심으로 넘기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고인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신앙을 토대로 한 정의를 구현하려 했다. 같은 교리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고인의 정의와 가톨릭 교회의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인데, 가톨릭 교회는 그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좌경화는 그 정도를 넘어섰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우리 국가사회의 전반적인 그것과 다르지 않다. 가톨릭 교계의 다소 머뭇거리는 듯한 태도에는 이런 측면이 분명 가세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9358&Newsnumb=2020049358

     

     

    경찰관 출신 천주교인 강남수씨, 대한민국-가톨릭 교회의 좌경화 걱정하며 24일간 단식 끝에 세상 떠나

    "정치사제들로 인해 천주교가 공산혁명기지로 변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어"....26일 오전 11시 대한문 앞 애국시민장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나라와 천주교회의 좌경화를 걱정하며 단식하다가 세상을 떠난 강남수(베드로)씨의 빈소. 사진=펜앤드마이크

    경찰관 출신의 천주교인이 좌경화되어 가는 대한민국과 가톨릭교회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24일간 단식기도를 하다가 4 24일 세상을 떠났다고 조갑제닷컴》 《펜앤드마이크가 보도했다. 고인의 이름은 강남수씨, 세례명은 베드로. 향년 87. 고인은 천주교 전래 초기에 순교자를 배출한 집안 태생으로 가톨릭이 모태신앙이었다. 단국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한 후 경찰에 투신, 평생 경찰관으로 봉직했다. 121사태 당시에는 청와대에 근무했다.

    조갑제닷컴》 《펜앤드마이크 보도에 의하면, 고인은 세월호 사태 이후 종북좌익세력들에 의해 나라가 위기에 빠졌는데 나라를 위해, 가톨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를 고민해 왔다고 한다. 작년 겨울 명동성당에서 단식을 하려 했으나 딸인 강아녜스씨가 봄에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만류했다고 한다.

    이계성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하 대수천) 대표에 의하면, 3 29일 이 대표를 만나자고 청한 강남수씨는 내 나이 87세로,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나라와 천주교를 위해 순교(殉敎)로 인생을 마감하겠다면서 정치사제들로 인해 천주교가 공산혁명기지로 변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다. 평생을 경찰로 살아온 자신이 천주교와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고, 마지막 남은 인생을 나라와 천주교에 바치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강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을 너무 못해. 그리고 좌경화된 천주교에 경종을 울려줘야 해요라면서 이계성 대표에게는 건강을 찰 챙겨 반드시 문 정권을 퇴치하고, 천주교를 바로 세워달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고 한다.

    단식을 시작하면서 고인은 “1. 대통령 잘못으로 계속 나라가 무너져가는 것을 보고 2. 한국천주교회가 하루하루 부패되어 가는 것을 보고 3.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이몸이라도 주님께 받쳐 도와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라는 간판을 텐트 앞에 내걸었다.

    이후 24일간 강남수씨는 정치인들처럼 보여주기 위한 가 아니라 진짜 목숨을 건 단식을 결행했다. 딸 강 아네스씨가 아버지, 단식 할 만해?”라고 묻자 다시 태어나면 두 번 다시 단식 안 할 거다. 너무 힘들어서. 먹는 유혹이 뱃속에서 그렇게 요구를 한다. 그렇게 뱃속에서 난리를 한단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라며 괴로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딸이 아버지, 때 되어서 자연사는 어쩔 도리가 없지만 이렇게 돌아가시는 것은 안 돼요. 남편도 죽고 제가 의지할 데라고는 아버지밖에 없는데 안 돼요라며 단식 중단을 호소했지만, “너는 너의 삶이 있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삶이 있으니 놓아 달라며 단식을 계속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딸이 병원으로 모시겠다고 했지만, “아니다. 이제 끝났다. 그러지 말거라라고 하셨다며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계성 대수천 대표와 딸 강 아녜스씨에 의하면 단식 내내 성당측은 냉랭한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이계성 대표는 플래카드도 걸지 못하게 하고, 단식 중이던 텐트 바깥으로 금줄을 치고 사람을 벌레처럼 취급했다. 급기야는 성당 마당에서 나가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었다. 나가지 않으면 하루에 50만 원씩 벌금처분을 받았다면서 그 성당은 강베드로가 40년을 다닌 성당이고, 성당을 건축할 때에 평생 박봉의 경찰로 3자녀를 키우며 검소하게 살아오신 강베드로가 적지 않은 금액인 수천만 원을 헌금한 성당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강 아녜스씨도 아버지가 이 성당을 40년 다니셨다. 그동안 이 성당 신자 가운데 약 900분 정도는 알고 지냈다. 친하게 지낸 분도 많다. 하지만 애국심과 신앙심이 강한 아버지가 나라를 망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고 좌경화되어 가는 천주교에 경종을 울리는 단식을 시작하자, 주임신부가 반대했다. 신자들이 주임신부 눈치를 보고, 아버지께 매몰차게 대했다고 말했다고 펜앤드마이크는 보도했다.

    고인의 죽음이 알려진 4 23일 이후 서울 목동 홍익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인의 빈소에는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 등 애국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고인의 장례는 당초 3일장으로 치를 예정이었으나, 애국시민단체들의 요청에 따라 5일장으로 변경했다. 발인은 4 26 (일요일) 오전 930, 홍익병원 목동관 장례식장. 같은 날 오전 10시 고인이 다니던 화곡2동 성당을 거쳐 11시에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애국시민장을 거행한 후 서울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으로 시신을 모실 예정이다. 고인이 10년 전 자신의 시신을 기증했기 때문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