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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오동동 '복쟁이 골목'내 고향 馬山 2020. 4. 9. 14:54
기억에 남아있는, 어릴 적 마산 선창가를 떠돌던 어두운 이야기들 중의 하나. 선창가에서 사람들이 자주 죽는다는 것인데, 그 게 생선을 먹고 죽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당시 매스컴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을 때라 주로 입소문을 타고 흉흉하게 들렸기에 아직도 기억 속에 어둡게 자리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생선이 바로 복어, 마산 말로 '복쟁이'다. 내남없이 가난하던 시절, 굶주린 사람들이 선창가를 뒤지고 다니다 버려진 복쟁이를 먹고 죽는 것이다.
통통한 생김새에 볼룩한 배하며, 아무리 버려진 생선이지만 주린 배에 복쟁이는 참 먹음직스러웠을 것이다. 복쟁이는 알과 내장에 사람에게 치명적인 강한 독을 지니고 있다. 독성이 강한 먹 거리가 맛은 뛰어나다. 아마도 복쟁이를 먹고 죽은 사람은, 말같지는 않지만, 먹는 그 순간은 환상적이었을 게다.
우리 마산사람들은 그 생선을 복쟁이로 불렀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후에 듣고보니 그 게 복쟁이가 아니라 복어가 표준어라고 하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마음먹고 찾아보니 복쟁이도 복어와 같은 표준어로 사전에 나와 있었다. 복쟁이가 마산 사투리인 줄 알고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고 잘 익숙하지 않은 복어로 불렀는데, 복쟁이가 어엿하게 사전에 나와있는 표준어라니 이제 마음대로 쓰고 불러도 된다는 게 새삼 반갑다.
그 '사람잡던' 복쟁이라, 이 생선은 잡히면 재수없는 것이라며 버려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어릴 적 선창가 낙시꾼 곁에는 버려진 복쟁이 서너마리가 허연 배를 내놓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예사였다. 그 복쟁이가 새삼 마산을 대표하는 명물 먹 거리가 되고있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산이 명실상부하게 전국에서 복쟁이 요리가 가장 다양하고 맛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산에는 아예 복쟁이만 취급해서 먹 거리로 내놓는 거리가 오동동에 있다. 이름하여 '오동동 복쟁이 거리'인데, 그 연원으로 보자면 '복쟁이 골목'으로 부르는 게 더 다정다감하게 들린다. 예전부터 그렇게 불러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골목도 옛 마산시에 붙인, '복요리'를 앞에 단 행정적인 용어가 있다.
마산의 복쟁이골목은 오동동에서 내려오는 어시장 못 미쳐, 왼편 산호동 골목길에 형성돼 있다. 예전에는 잡어를 잡는 '고데구리'(소형기선 저인망어선)가 드나들던 바닷가 선창이었는데, 매립이 되어 건물들이 들어선 길 거리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어선이 들고나던 자리가 바로 복쟁이골목인 것이다. 이곳에 30여개의 복쟁이 전문식당이 마치 홍합처럼 다닥다닥 붙어 들어서 하루 24시간 장사를 하고 있다. 고모. 쌍용. 마산. 김해. 덕성. 충무. 미진. 남성. 금복. 진미. 초원. 명동. 광포. 경북. 경남. 삼성. 괭이... 대충 눈에 들어오는 식당 이름만 이렇다.
이곳 복쟁이골목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가 있지만, 이른바 그 원조가 '남성식당'이라는 점에서는 별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1940년대 초, 박복련이라는 솜씨 좋은 아낙이 친정어머니로부터 독 제거 등 복쟁이 다루는 법을 배워, 해방 이후 유곽과 술집이 밀집하던 오동동에 복쟁이국을 전문으로 하는 남성식당을 낸 것에서부터 복쟁이골목의 유래를 찾는다는 것이다. 남성식당은 박복련 할머니의 솜씨로 입소문을 타면서 '할매집'으로도 불리운다. 독이 제거된 복쟁이로 끓인 맑은 국을 술꾼들에게 아침 해장국으로 내놓았는데, 시원한 맛과 함께 숙취해소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소문을 타고 마산과 그 인근에 알려지게 된다. 맑은 국물의 마산 복쟁이국이 전국의 여럿 복국 가운데 마산의 상징이 된 게 이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남성식당은 이런 맛으로 소문이 나면서 다른 곳으로도 알려진다. 그러다 남성식당 복쟁이국이 전국적인 명성을 타게 된 것은 1970년대 초반이고, 이에는 맛도 그렇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톡톡히 한 몫을 한다. 그 무렵 박 전 대통령이 마산 수출자유지역을 시찰하면서 점심을 먹으려고 들린 곳이 바로 남성식당이었다. 그 식당에서 제일 잘 하는 딱 한 가지, 복쟁이국을 박 전 대통령 앞에 점심상으로 내놓았는데, 그 맛에 박 전 대통령이 감탄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뉴스가 된다. 이게 신문과 방송을 타게되고, 복쟁이국이 대통령이 좋아하는 마산명물로 소개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를 계기로 주변에 있던 칼국수. 수제비 등을 팔던 식당들이 하나 둘씩 간판을 바꿔달고 복쟁이식당으로 나서면서 오늘의 복쟁이골목이 생기게 된 것이다. 박복련 할머니는 지난 2003년 타계했고, 지금은 아들과 며느리가 3대 째 가업삼아 가계를 이어오고 있다. 1980년대 언젠가 그 집에 들렀을 때 맛나고 푸짐한 졸복수육에다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던 그 할머니가 그립다.
마산 복쟁이골목의 주 메뉴는 그 출발이 그랬듯 역시 복쟁이국이다. 다시마 등으로 국물을 우려 낸 육수에 복쟁이와 미나리. 콩나물. 파. 마늘을 넣고 푹 끓이는 게 기본이다. 공통적으로 미나리는 줄기가 얇고 잎이 신선한 것만 골라 큼지막하게 썰어 넣는다. 알싸한 향취를 내는 미나리의 독특한 성분은 몸에 쌓인 술기운을 풀어주고 신진대사를 증진시킨다.물론 식당마다 저마다의 솜씨와 비법이 가미된다.
특히 육수는 저마다 다르다. 각 식당이 이렇듯 각자마다 육수를 만드는 재료와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골목거리에 복쟁이국 맛이 같은 집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나도는 게 일리가 있다. 각 식당들 대부분이 수십 년 동안 가업을 이어온 만큼 식당들 나름의 복쟁이국 국물를 내는 비법들을 가지고 가족들에게만 전수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식당의 경우 육수의 원료로 집에서 담근 조선된장을 쓰기도 한다. 각 식당에서 복쟁이국에 곁들여 내놓는 각종 반찬들도 맛깔스럽지만 이 또한 저마다 다르다. 광포식당의 경우 명태코다리 조림과 피클 형태의 오이김치, 그리고 멸치젓갈이 맛있기로 소문이 나있다.
마산 복쟁이골목의 복요리가 유명해지면서 외지에서 '위장취업'을 해 요리방법을 배워가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육수 만드는 방법 등에 대한 '보안'이 철저해졌다고 하는 얘기도 있다. 어찌어찌해서 그 방법들을 알아내 외지에서 식당을 내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는데, 대부분이 실패한다고 한다. 아무리 그 방법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70여년을 이어져 내려온 맛에 담겨진 전통이나 분위기라는 게 있는 만큼 그 맛이 외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산의 또 하나의 명물 먹 거리인 아구찜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언젠가 마산 아구찜을 배워 서울 신촌에서 아구찜 식당을 냈는데 장사도 하기 전에 가게를 접는다. 신촌의 건물 옥상에서 말린 아구가 모두 썩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곳 복쟁이골목에는 복쟁이국이 물론 주 메뉴이지만 이 외에 복불고기. 북껍데기부침. 복튀김. 복수육. 복초밥 등 다른 메뉴들도 있다. 이들의 기본 재료는 물론 복어다. 복쟁이국은 주로 술 마신 뒤 해장을 위해 찾지만, 다른 요리들은 오히려 술 안주로 많이들 찾는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야들야들한 복튀김은 주로 복어 아랫배와 꼬리의 살을 소금. 후추. 청주로 밑간을 해 튀겨낸다. 복수육과 함께 최고의 술 안주로 친다. 복껍질은 콜라겐 성분이 많아 물에 데치면 꼬들꼬들해져 씹는 맛이 좋아지는데, 이를 무침으로 내놓아 술꾼들의 군침을 돌게 한다. 복수육 중에서도 졸복수육은 한 입 만큼의 앙증맞은 졸복의 야들야들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한 때 남성식당의 졸복수육이 초장과 더불어 제일 맛있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복쟁이골목의 각 식당에서 쓰는 복어는 주로 참복과 까치복, 밀복, 은복, 졸복 등이고, 어떤 복을 재료로 썼냐에 따라 물론 음식 값도 다르게 매겨진다. 은복은 쫄깃쫄깃한 맛이 구미를 당기게 하고, 까치복은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이 둘의 맛을 합친 것을 식도락가들은 참복으로 친다. 그래서 참복이 제일 비싸다. 우리나라는 임진강 유역부터 제주도까지 천혜의 복어 서식지로, 동. 서해안과 남해안을 따라 참복. 까치복. 밀복. 은복. 졸복. 황복 등이 많이 잡힌다. 마산은 특히 낙동강이 남해로 흘러드는 리아스식 해안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맛있고 싱싱한 각종 복어의 산지로 꼽혀져 왔다.
복쟁이는 살집이 차오르는 늦가을부터 이듬해 초봄까지가 제 맛이다. 이른 봄, 싱싱한 미나리 대궁을 얹어 끓인 복쟁이국에는 봄 향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동해에서 많이 잡히는 밀복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최상의 맛을 낸다. 밀복을 재료로 한 복쟁이국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곤'이다. 수놈의 종소, 암놈의 알에 맞먹는 것으로 그 맛이 기가 막히다. 복쟁이 알은 독 때문에 대부분 버린다. 때문에 '곤'은 맛도 그렇지만, 그 희소성 때문에도 귀하게 대접받는다.
마산 복쟁이골목의 복쟁이국은 특히 마산을 떠나 객지에 있는 출향민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향수의 맛이다. 그래서 마산에 가면 꼭 찾게되는 곳이 복쟁이골목이다. 복쟁이국도 그렇지만, 마산을 그리워하는 출향민들로서는 복쟁이국도 맛보고 무학산을 비롯한 마산의 다른 곳도 맛볼 수 있는 방안을 저마다 찾게 마련이다. 서울에 사는 어떤 마산 사람은 먹고 사느라 시간 내기도 여의치 않을 처지에서 이렇게 한번 해 보았다고 우스개삼아 자랑한다.
"서울에서 야간 우등고속버스를 탄다. 마산에 도착하면 새벽 4시 경이다. 복쟁이골목으로 간다. 거기서 해장을 겸해 복쟁이국을 먹고 조금 쉰다. 날이 좀 밝아졌을 때 교방동 서원골로 가 무학산을 오른다. 무학산 산행을 하고 교방동으로 내려와 서원골 초입에 있는 옛날식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나오면 오후다. 오동동 통술골목으로 간다. 거기서 친구 등 지인을 만나 술 한 잔을 나눈다. 술 한잔과 정담을 나누면서 밤이 이슥해지면 다시 복쟁이골목으로 가 식초 듬뿍 친 복쟁이국을 먹는다. 그리고는 다시 터미널로 가 야간우등 고속버스를 탄다. 한 잠자고 나면 서울이다."
"오이소/
드이소/
속이 써언- 하지예/
너 밤새 핏발 선 눈빛으로 날 할퀴고 무너뜨려도/
너 이른 아침까지 끈질기게 달라붙다 끝내 나를 마셔 버려도/
복국, 너 하나만 있으면 된다./
술, 너 이제 꼼짝없이 죽었다."
(이소리 '복국사랑' 전문)
살기에 저마다 팍팍한 날들이다. 한 잔술에 시름을 달래고, 쓰린 속은 복쟁이국으로 풀어보자. 마산에는 복쟁이국이 펄펄 끓고있는 복쟁이골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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