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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쓸쓸함에 대하여村 學 究 2010. 11. 1. 17:54
아내를 자주 나무라는 편이다.
물론 아내도 나를 자주 나무란다.
둘 간의 나무람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나무람은,
사안의 잘잘못을 가리고자 하는 게 아니라,
아내의 아둔함, 이를테면 세상살이에 뭘 잘 모른다든가
잘 까먹고 하는 건망증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도 무얼 모르고, 깜빡깜빡 잘 잊어 먹어면서
남편없는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데, 집 전화의 벨이 울린다.
마누라가 받았다.
구두를 신으며 무슨 전환가 궁금해 하고 있는데,
마누라의 전화 받는 투가 예사롭지 않다.
뭐꼬. 와 그라노. 무슨 전화고?
집 전화가 끊긴다 카는데요.
집 전화가 끊긴다니. 갖고 와 봐라.
전화를 받았더니 뭐라뭐라 하는데 한국통신 우쩌구 저쩌구 한다.
다음은 들을 필요도 없다. 우리 집은 한국통신이 아니다. LG 인터넷 전화다.
보이스 피싱 전화였던 것이다. 아무 말 않고 끊어 버렸다.
옆에 있던 마누라의 표정이 묘해진다.
아, 그 거 보이스 뭐시기 하는 그 긴가베...
뒷말이 쑥 들어가는 눈치다.
좋은 말이 나올리 없다. '악담'이다.
봐라, 척 들어보모 모르나.
니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 바보처럼 당하는 것 아이가.
좀 단디해라.
마누라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받아들고는 테이블 쪽으로 간다.
현관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오늘따라 현관문은 또 왜그리 세게 닫기는가.
전철역으로 가는 오솔길.
마누라는 지금 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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