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아버지의 山
    추억 속으로 2010. 11. 3. 08:04

    우리들은 대개 그랬다. 

    특히 장남이면 아버지와의 대화가 좀 궁했다. 

    딱히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아버지는 항상 엄했고, 칭찬에 인색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나더러 같이 산에 가자고 했다. 

    웬일인가.  함께 있으면 어색함이 줄줄 흐르지 않던가. 

    그런데 같이 산에 가자고 한다.  

    알아봤더니 아버지와 단둘이 가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몸담고 있던 산악회에서 가는 산행에 같이 가자는 것이다. 

    그래도 어색함이 없어지겠는가. 

    혹시나 하는 어색함을 줄이려고 한 친구를 꼬드겼다. 

    가야산을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갔다.  그 게 1975년 늦가을 쯤이다. 

    첫날 밤을 해인사 입구 객사에서 지냈는데,

    아버지는 동료들끼리 있고 나는 친구와 가야산 밤하늘을 보면서 보냈다. 

    둘이서 한잔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가야산은 넓고 깊다. 

    해인사를 지나 조릿대 길을 따라 한없이 오른다. 

    가파르지는 않아도 큰 산다운 기개에 마음은 바빠지고 움추려든다. 

    아버지는 일행들과 저만치 앞서 가고 나는 친구와 함께 간다. 

    토신길은 말 그대로 신의 길이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불심이 느껴지는 길이다. 

    청량한 바람에 조릿대 이파리들이 사각댄다. 

    염불소리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향내음이 계속 난다. 

    어느 언덕길을 헉헉대고 오르고 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아버지가 서 있다.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이리 온나.  내 손 잡아라.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언덕에 올라섰다. 

    아, 또 어색하다. 

    상장봉 꼭대기에는 군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정상 바로 앞에 군인들이 숙소가 있어 한번 들여다 봤다. 

    한 군인이 무슨 책을 보다가 마주하니 싱긋 웃는다. 

    그 군인이 보는 책은 영어단어장이었다.  분명히 기억한다. 

    그날 산행은 길었다. 

    기억에 뚜렷하지는 않지만, 가야산을 오른 후 그 옆의 산도 올랐던 것 같다. 

    매화산이라고, 봉우리들이 기이해 제2 금강산이라고 부르는 산이다. 

    하루에 천미터가 넘는 산을 두개나 오르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그 일행들도 산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마산가는 버스에 올랐다.  아버지와는 멀찍히 떨어져 앉았다. 

    아버지가 내게로 왔다.  한마디. 

    철이 니, 산 참 잘 가더라. 

    아버지로부터 들어본 거의 유일한 칭찬이다. 

    그래서 가야산하면 아버지가 떠 오른다. 

    그리 길지 않은 아버지와의 인연에서 처음 같이 오른 산이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두해 후 돌아가셨다.

     

     

     

    그 가야산을 다시 올랐다. 

    요번에는 해인사 쪽이 아니라, 그 반대편 성주쪽에서다. 

    해인사 토신길이 조릿대길이라면 백운동 길은 야생화의 길이다. 

    노오란 얼레지들이 지천에 피었다. 

    산을 오르는데,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난다. 

    동행한 친구가 마다한 칠불봉을 나혼자 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가야산 어디선가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토신길로의 하산은 그야말로 꿈의 길이다. 

    비가 온 후라 청량하기 이를데 없다. 

    바람은 그 때 그 바람이다. 

    그 바람 속에서 아버지를 찾는다.

    '추억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산의 소중한 며느님들  (0) 2010.11.17
    충무로, 추억의 맛집들  (0) 2010.11.07
    嘉會洞의 추억  (0) 2010.09.27
    선정릉(宣靖陵), now and then  (0) 2010.09.09
    일산 호수공원의 추억  (0) 2010.08.22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