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선정릉(宣靖陵), now and then
    추억 속으로 2010. 9. 9. 15:36

    점심을 어쩌다 그 쪽에서 먹게 되는 바람에

    모처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좋은 구경을 했다.

    추어탕 집이 바로 선정릉(宣靖陵) 곁에 있는데, 자리 한번 잡기가 힘들다.

    어제, 느즈막하게 갔더니 어쩌다 자리가 있어 추어탕 한 그릇을 먹었다.

    선배님이 선정릉에서 차나 한 잔 하자고 한다.

    선정릉은 옛날과 달리 그냥 무상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었다.

    65세 이하는 천원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면서,

    내가 몇살 쯤 돼 보이느냐고 물었더니 쌩뚱한 표정으로 글쎄요 한다.

    장난으로 해본 말인데, 매표소 아주머니는 뭔말인가 하는 심각한 표정이다.

     

     

                                   (선정릉 초입. 왼쪽 건물이 제사를 모시는 '정자각(丁字閣)'이고 그 옆이 '수복당'이다)

     

    30년 만이다.

    지난 80년 신혼 때, 이 쪽 도곡동에서 살았다.

    아파트가 도곡동 사거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곳은 도곡동 사거리다.

    두 곳이 있었는데, 개나리 아파트로 가는 사거리는 알겠다.

    사거리도 나를 알아본다. 언덕 길로 가면 개나리 아파트가 있었다.

    선정릉을 당시 그 쪽에서 걸어가노라면 참 한적한 길이었다.

    기억으로는 한 15분 정도의 걸음길이었는데,

    지금은 자동차와 사람들이 넘쳐나는 복잡한 길이라,

    걸어서 가기는 좀 힘들게 보인다.

     

     

                                                               - '정자각' 너머 보이는 무덤이 성종과 그의 계비 정현왕후를 모신 선릉(宣陵) -

     

    그 때 선정릉을 보면서 느낀 것은 경주의 왕릉이었다.

    경주를 가보면 참 신기한 것은 동산 같은 왕릉들이다.

    시내 한 복판에 웅장하게 솟아있는 그 무덤들을 보면서

    王都로서의 경주를 실감하는 것이다.

    외국사람들에게 물어봐도

    한국에서 제일 신기하게 보이는 것 중의 하나가

    경주의 왕릉이라는 자료를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선정릉도 그렇다.

    30년 전 강남 도곡동이 지금보다는 한적한 곳이었지만,

    시가지 중심에 옛 임금의 웅장하면서도 봉긋한 무덤이 있다는게

    경주 같은 느낌을 안겼다.


    30년 전의 선정릉은 왕릉치고는 참 소박했다는 느낌이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능 입구에 있던 작지만 고풍이 넘치던 낡은 기와집이다.

    아마도 능을 지키는 능지기가 살던 곳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다.

    기와집 뒤로 논과 밭이 있어 그 곳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왕릉를 지켜온 가문의 집이였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그 집은 없었다.

    내 기억이 잘못 된 것일까.

    홍살문 오른 편에 아주 작고 소박한, 정자같은 집이 있다.

    수복당(守僕堂)이라는 안내표지가 있는데,

    말하자면 왕릉을 지키는 종의 집이라는 뜻 아닌가.

    그러면 이 게 옛날에 보았던 그 기와집이란 말인가.

    이게 내가 그 때 봤던 그 집이라면,

    내 기억을 탓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 수복당(守僕堂) -


    그 때나 지금이나 보이고 느껴지는 것은 울창한 나무들이다.

    특히 능의 오른 편 언덕에 자리한 소나무들은 적송들로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나무들은 곧게 뻗은 것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다소 비틀려진 모습들이다.

    어찌보면 벌거벗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았다.

    임금이 승하해 묻히자 그를 슬퍼하는 백성들의 모습인가. 나의 생각이다.

    이 어딘가에 예전에 약수터가 있었다. 그 곳은 없다. 그러니 있었던 장소도 모르겠다.

    그 무렵, 집 사람이 큰 애를 임신 중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 선릉 약수터 물이 복 받은 좋은 물이라는 것.

    이른 새벽이면 집에서 약수터까지 물을 길러 다녔다.

    새벽에 담은  맑고 깨끗한 물, 마누라는 그 물을 달게 받아 마셨다.

    그 덕이었을까, 정말 튼실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 언덕 아래에 넑직한 터가 있었다. 그 곳은 지금 휴게소가 들어서 있다.

    80년대 초반, 이 곳에서 야유회를 가진 적이 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박 진 군이 회장일 때,

    고등학교 야유회를 이 곳에서 했는데, 많이들 나왔다.

    모두들 고만고만한 신혼무렵이라, 마누라들을 끼고 나온 게 기억에 새롭다.

    야유회를 역사가 깃든 사적지에서 한다는 게 어디 가당찮은 일인가.

    그러나 그 때는 그 게 가능했다.

    문화사적에 대한 인식이 지금만큼 못했던,

    좀 과정해서 말하자면 호랭이 담배먹던 시절의 일이다.

     

     

                                                                                                       - 선릉(宣陵) - 


    선정릉엔 주지하다시피 두개의 왕릉이 있다.

    정자각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게 조선조 9대 임금인 성종과 계비인 정현왕후를 모신 선릉이고,

    11대 중종을 모신 릉이 정릉(靖陵)으로, 정자각의 동쪽에 있다.

    원래 이곳엔 선릉 만 있었다. 그러나 1544년 중종이 승하한 후 경기도 원당에 모셨는데,

    그 터가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문정왕후가 1562년 이 곳으로 이장해 와

    왕릉이 두 개인 선정릉이 된 것이다.

     

    무덤은 변함이 없다. 망자가 살아나오지 않는한. 

    30년 전에도 능에 올라 석물들을 살펴보면서

    성종이라는 임금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무상을 느껴본 적이 있다.

    다시 올라 본 선릉엔 잔디깍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무덤의 잔디깍기는 묘한 느낌을 준다.

    망자의 길게자란 머리를 깍아준다는 의미를 생각하니 그렇다.

     

     

     

     

     

    이장을 한 탓인가.

    중종의 무덤은 성종의 그 것에 비해 규모가 좀 작다.

    세워져 있는 문.무인상 등 석물도 성종 것에 비해 좀 초라한 느낌을 준다.

     

    정릉엔 슬픈 얘기가 있다.

    임진왜란 때 선정릉은 왜군에 의해 파헤쳐졌다.

    선릉의 경우 성종과 정현왕후의 遺軀도 없어졌다.

    왜군이 파내 어딘론가로 보내 훼손시킨 것이다.

    선릉이 그러니 정릉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정릉에선 시신이 하나 나왔다. 그러나 그 게 중종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중중은 더운 여름 날 죽어 묻혔다.

    그렇기 때문에 시신이 남아있을리 없다.

    그래서 그 시신이 중종이 아니라는 판단아래 시신을 무덤에서 파내 다른 곳에 묻었다.

    그 후 정릉에서 밤마다 비통한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신이 중종의 것일 수도 있다.

    땅의 기운, 즉 지기가 좋으면 시신이 썩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 정릉(靖陵) -

     

    그런 생각으로 정릉을 보니 마음이 좀 짠해진다.

    더구나 30년 만에 올라 본 정릉은 한창 개수작업 중이다.

    무슨 갑바 같은 것으로 무덤을 휘둘러 감아 놓은 게 좀 으시시하다.

    죽어서 이장에다 시신까지 버려진 중종의 얄궂은 운명의 영혼이 어른거려서인가.

    그래서일까. 정릉 앞의 소나무들은 더 비틀려진 모습들이다.

     

     

     

     사람이 죽어 묻혀있는 幽宅을 대하면 마음이 숙연해 진다.

    그 게 왕릉이라고 어디 다를 바 있겠는가.

    그 건 시공을 초월한다.

    30년 만에 둘러 분 선정릉의 느낌도 그 것이다.

     

    人生無常

    諸行無常

      



    '추억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산의 소중한 며느님들  (0) 2010.11.17
    충무로, 추억의 맛집들  (0) 2010.11.07
    아버지의 山  (0) 2010.11.03
    嘉會洞의 추억  (0) 2010.09.27
    일산 호수공원의 추억  (0) 2010.08.22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