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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무로, 추억의 맛집들
    추억 속으로 2010. 11. 7. 18:45

    한창 젊을 때, 충무로에서 10여년을 보냈다.

    극동빌딩 건너 편 회사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충무로였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는 충무로 하면 우리나라 영화의 산실로 치부되던 곳이다.

    그 때라는 게 1980년 초반이다.

    그런 만큼 그 무렵의 충무로는 크고 번화하고 화려했다.

    갖은 음식점과 술집들이 즐비했다.

    무랑루주던가, 세종호텔 옆 지하 극장식 나이트 클럽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이 주일이 사회를 보고 있었다.

    어느 날, 밤이 이슥해 그 앞을 지나면서 한잔 걸친 그 양반과 조우한 적도 있다.

    호랭이 담배먹던 시절이다. 

    충무로는 회사를 옮기며 떠난 후에도 사진 때문에 가끔씩 들리던 곳이다.

    잘 알고 지내는 카메라 수리점은 지금도 그 곳에 있다.

     

    (충무로 극동빌딩 뒷거리. 극동빌딩도 많이 변했다.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아직도 하고 있었다. 지하에 있던 추억의 '극동다방'은 없어진지 오래다)

     

    그저께 모처럼 충무로로 나가 봤다.

    예전 회사사람들과의 만남 장소가 극동빌딩 로비였기 때문이다.

    만나서 밥 먹을 곳을 찾아가면서 옛 길을 걸어 보았다.

    추억이 깃든, 정감나는 곳이지만 충무로는 예전의 그 충무로가 아니었다.

    잘 다니던 밥집과 술집이 지금도 있을리가 없다.

    옛 생각을 떠올리며 찾아 봤는데, 그래도 몇 집은 그래도 있다.

    극동빌딩 왼편 골목길에 있는 돼지갈비 집도 그 중의 하나다.

    부산이 고향인 주인이 뚱뚱해서 '뚱보'라고 불렀는데, 그 게 옥호가 된 집이다.

    그 집은 옛 그대로였고, 밖에서 살짝 들여다 봤더니 주인도 옛날 그 주인이다.

    주인의 여동생이 예뻤다. 그 여동생도 그대로 있다.

    살이 좀 올랐다. 물론 아줌마였지만, 예전과 별로 달라진 모습이 아니다.

    눈이 마주치면 아는 체를 할까봐 좀 멀리 떨어져서 가계를 들여다 봤다.

     

     

    ('뚱보' 돼지갈비 집. 1981년에 개업했다는 간판에서 나의 충무로에서의 시절과 연륜을 같이 한다)

     

    그 옆집에 아주 이색적인 술집이 하나 있었다. 닭꼬치구이 집이다.

    허름하고 좁은 집이었지만, 퇴근 길에 부담없이 소주 한잔 할 수 있던 곳이다.

    그 집이 아직도 그 곳에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주인 양반도 그대로다. 이젠 지긋한 장년의 모습이다.

    우리들은 그 집을 '참달고멍'로 불렀다.

    이 집의 주 메뉴인 참새구이, 닭꼬치, 오뎅, 멍개의 앞 글자를 따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닭꼬치 구이집. 지금보니 '애심'이라는 가계 이름이 있다. 예전엔 없었다)

     

     

    ('뚱보' 돼지갈비 집과 닭꼬치구이 집은 사이좋게 붙어있다)

     

    이 집들에서 조금 내려가 명보극장 가는 골목엔 생선구이 집이 있었다.

    옥호도 없이 허름하고 비좁았다. 그러나 맛 하나는 일품이었다.

    특히 시레기 국이 좋았다.

    전날 마신 술로 속이 북닥한 날이면 시레기 국 먹으러 자주 가던 곳이다.

    두 집이 붙어 있었는데, 기억으로는 아래 집 맛이 더 좋았다.

    그 집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걸로 기억된다.

    좁은 가계 안엔 할머니가 다디던 절의 큰 달력이 걸려 있었다.

    그 생선구이 집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래 집을 들여다 봤더니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그 무렵 70이 가까웠으니 아마도 돌아가셨을 것이다.

    당시 윗집은 주인이 젊은 아주머니였다.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웬 남자가 생선을 굽고 있다. 아들일까.

     

     

    (생선구이집. 두 집이 붙어있었는데, 왼쪽 집이 더 맛있고 손님이 많았다)

     

    그 무렵 호주머니가 좀 두둑하면 큰 마음 먹고 가는 집이 있었다.

    소꼬리 요리로 유명한 '파주옥'이다.

    꼬리무침, 꼬리탕에 소주 한잔 할라치면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주인 아주머니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인심이 후했다.

    이 집은 특히 겉절이 김치가 맛 있었다.

    언젠가 한번 들렀더니, 지금은 돌아가신 원로 가요작곡가 박 시춘 선생과

    반 야월 선생이 마주 앉아 약주를 하고 계셨다.

    좀 얼큰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품파 품파하는 장단이 나온다.

    박 시춘 선생이 입과 손으로 반주를 하고

    반 야월 선생이 그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하도 정겹고 신이나서 모든 손님들이 넋을 잃고 볼 지경이었다.

    작년인가 반 야월 선생을 뵙고 그 때 그 얘기를 했더니 추억에 잠기시는 모습이었다.

    '파주옥'도 예전 그 자리에 옛날 옥호 그대로 있었다.

    워낙 유명한 집이라 주인도 예전 그대로 일 것이다.

    그 후덕했던 주인 아주머니는 아직도 가계를 지키고 있을까.

     

     

    ('파주옥'도 옛 그대로다. 가만보니 메뉴에 곰탕이 추가됐다) 

     

    칼국수를 잘 하던 '사랑방 칼국수'도 예전 그대로였다.

    아주머니도 그대로 계셨고, 주인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아주 앳돼 보이던 처녀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중년의 나이로 아직도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집은 지금도 가끔 생각나면 들러서 칼국수를 먹곤 한다.

    계란을 추가하면 100원을 더 받았는데, 아직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사랑방' 칼국수 집) 

     

     

    (술집 '색'이 있던 건물. 건물은 좀 고친 것 같다. 술집이 있었던 2층엔 출력회사가 입주해 있다) 

     

    잘 다니던 술집은 몰론 한 곳도 남아있는 곳이 없다.

    스카라 극장 쪽으로 빠지는 거리 왼쪽에 '색'이라는 바가 있었다.

    그 집 주인이 아마도 박 정숙이었을 것이다.

    허름한 4층짜리 건물의 2층에 있었는데, 많이 다녔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그 소리에 나와 맞아주던 그 여자가 생각난다.

    딱 한개 뿐인 룸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좀 특별한 손님이어야 했다. 그 방에 내가 들어가본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민물장어를 팔던 '장추'도 그대로 있다. 이 집에선 김밥도 팔았는데, 비쌌지만 맛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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