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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의 소중한 며느님들
    추억 속으로 2010. 11. 17. 20:25

    어쩌다 한번씩 가는 고향길은 언제나 바쁘다.

    약속이 된 사항을 맞추느라 그렇지만,

    약간 부풀려지고 들뜬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고향은 언제나 그랬다.

    그리던 그 게 항상 그 곳에 있을 것 같고,

    보고싶은 사람도 항상 그 곳에 있을 것 같고.

    그러니 온전한 마음일 수가 없다.

     

    16일 점심도 그랬다.

    모시고 간 선배님이 미리 잡아놓으신 약속이었지만,

    흡사 오래 전에 만나야 할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선배님은 신신당부를 하셨다. 잘 모셔야 한다. 잘 모셔야 한다.

    나에게 하는 당부이겠지만,

    언뜻 보기에 그 것은 선배님이 자신에게 하는 다짐처럼 느껴졌다.

     

    두 분이 어려운 걸음을 하셨다.

    한 분은 마산에서, 또 한 분은 진해에서 오셨다.

    이 분들을 어떻게 호칭해야 하나.

    나의 어머니 연세보다 좀 높으니,

    어머니라고 해도 될 것이고, 그 게 좀 어색하면 할머니라고 해도 될 것이다.

    아니면 그 양자를 얼머부리며 불러도 될 것이고.

     

     

    구(具) 할머니와 이(李) 할머니.

    두 분은 고향 마산의 존경스런 어르신인

    옥 기환(玉 騏煥) 선생과 명 도석(明 道奭) 선생의 며느님들이다.

    19세기 말, 나라가 스러지는 어지러운 시기서 부터

    6.25 민족상잔의 어려운 시기를 같이 한 두 어르신은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에 헌신한 선각자적인 민족운동가이다.

    특히 국난의 시기 자산가들이 가져야 할 몸가짐을 몸소 실천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표상격인 분들이다.

    두 분 할머니는 이 어르신들을 모시고 한 평생 가문의 영욕을 함깨 한 며느님들이다.

    선각자들은 원래 그렇다. 빛이 크고 밝으면 그림자도 더 길고 어둡다.

    옥 기환(1875-1953), 명 도석(1885-1954) 두 어르신이

    나라의 독립과 교육사업, 특히 향리인 마산에 쏟은 열정과 노력은 지대한 것이다.

    그에 비해 두 분이 받으신 고초도 이루 말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해방공간, 그리고 동족상잔으로 이어지는 이념대립의 부산물까지를 고스란이 짊어지신 것이다.

    두 며느님은 그 과정을 온 몸으로 겪고 지켜보신 분들이다. 

    그 고초는 결국 한으로 남기 마련이다.

    두 며느님의 한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 한은 시아버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고마움으로 승화되어 있었다.

     

    "큰 사람의 풍모는 조그만 행동에서도 그 뽄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시아버님을 회상하며 두 분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다.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것이다.

    두 분 며느님들의 목소리가 누구 앞서고 뒤서고 할 것 없이 젖어가고 있었다.

    시아버님의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는 얘기다.

     

    대갓집의 며느리 생활이 오죽 어렵고 피곤했겠는가.

    이 할머니는 결국 못참고 친정으로 가 친정아버지에게 하소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런다.

    명 선생이 그 소식을 듣고 사돈집으로 어려운 걸음을 했다. 

    그리고는 사돈 앞에서 며느리에게 하는 말.

     

    "아가야, 아가야, 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나도 가야 하는기라..."

     

    구 할머니는 풍채좋고 덕망 높았던 시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새로운 모양이다.

     

    "마산 장날인 5일과 15일엔 우리 집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었지요.

    저자거리의 걸인들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줄을 이어 섰었지요.

    그 날은 바로 '옥 부자집 밥먹는 날'이었지요. 시아버지는 그런 방법으로

    어렵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베푸시는 분이었지요.

    또 가족들에게 한달 중 하루는 굶게 하시기도 했지요.

    못 먹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는 것이었지요"

     

    재미있는 얘기도 하셨다.

    다름아닌 춤에 관한 얘기다. 한 평생 춤을 한번도 춰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서른 무렵 젊었을 적에 친구들과 레스토랑에 갔는데,

    그 곳에서 어떤 남자가 같이 춤을 추자고 했지요.

    도망치듯 나왔었지요. 나는 죽는 줄 알았십니더"

     

    이 할머니 얘기다. 그 얘기를 몇번이나 하신다.

    농담삼아 "그 게 한이 되시는 게 아닌지요"라고 물었더니 얼굴이 발개지신다.

    그러면서도 연신 그러면 안 되지요, 그러면 안 되지요 하신다. 

     

     

    "세월이 우째 이렇게 빠를 수가 있지요?

    세월이 정말 깜빡하는 순간에 지나가버린 것 같십니더"

     

    두 며느님은 시간과 세월을 자꾸 말씀 하셨다.

    아무리 어렵고 고달픈 세월이었지만, 결국 화살같이 지나갔다는 얘기다.

    그 세월 속에 녹아든 인생의 무게가 결코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두 며느님의 표정은 그러나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아이고 세월이 우째 이리 빨리 흘러가는지..."

     

    식당을 나오면서도 그 말씀이 자꾸 귀에 가물거린다.

    선배님이 약속을 하신다.

    다음엔 노래방에서 더 즐겁게 모시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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