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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주년 ‘10. 26’과 나
    村 學 究 2020. 10. 26. 18:29

    오늘이 ‘10. 26’ 41주기 되는 날이다. 그냥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하도 험하고 거칠게 돌아가는 세상 탓일 것이다. 

    유튜브에서 광화문 박정희 대통령 추모 분향소 실황을 보고 오늘이 그 날인 걸 알았다.

    이 충격적인 사건을 잊을 수가 있을까.

     

    10. 26 다음 날 새벽 직장예비군 비상소집이 걸렸다. 

    예비군복을 입고 종로 5가 옛 전매청 맞은 편 골목식당에 앉아 무슨 일인가며 서로들 수군거렸지만, 

    누구 하나 비상소집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잠시 비원 앞에 있던 회사에 들렀을 때 상황을 알았다. 모스크바 한국어 방송에서 나왔다. 

    그 방송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정신을 차리고 듣자니 논평이 나온다. 모스크바 방송은 김재규와 미국이 합작한 사건으로 보고 있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10. 26 하루 전 날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를 은밀히 만난 걸 하나의 시사점으로 들고 있었다.

     

    이날 새벽 7시에 정부 공식발표가 있었다. 

    중앙청기자실에 나타난 김성진 당시 문공부장관 겸 정부대변인은 이미 눈두덩이 눈물로 부어올라 있었다. 

    육성 발표 이전에 칠판에 글짜부터 썼다. 정확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박정희 대통령 각하 유고’가 아니었나 싶다. 

    이어 최규하 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과 전국 일원의 비상계엄령 소식을 칠판 가득 적었다.

     

    이게 내가 겪은 10. 26의 경험이다. 10. 26으로 나라는 앞날을 점칠 수 없는 그야말로 백척의 간두에 섰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그랬다. 나는 당시 회사에 사표를 제출한 상태였다. 판문점 남북대화 실무팀 일원으로 선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10. 26으로 무산이 됐다. 박 대통령을 거쳐 최규하 권한대행까지 결재가 났지만, 그 후 신군부에 의해 흐지부지 됐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원대복귀 됐지만, 그 이후 내 진로도 우습게 흘러갔다. 

    10. 26은 나라의 방향을 틀어놓은 국가적인 사건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던 것이다. 

    (사진은 전 한국일보 권주훈 기자 분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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