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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다가 화채봉(華彩峰) 쪽으로 하산하다 죽을 뻔한 적이 있다. 초가을 비가 오락가락한 날씨였는데, 화채봉에 올라 권금성 쪽으로 내려가는데,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의의 후드를 앞으로 바짝 당긴 상태에서 한참을 허겁지겁 가는데, 아무리 가도 권금성 쪽이 아닌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 멈췄다. 지친 것이다. 그 상태에서 빗물 머금은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는데, 머얼리 설악의 여러 계곡들에 있는 수많은 폭포들에서 물을 쏟아내고 있는 광경이 흐릿한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문득 정신을 가다듬어 주변을 보니 바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운무 속에 내가 서 있었고, 도무지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바로 죽음의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후드가 주변 시선을 가리는 바람에 화채봉에서 내려올 때 이정표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가 죽음의 계곡 초입이라는 걸 안 것은 비 오는 날, 설악 계곡들의 수많은 폭포가 갑자기 나타나 한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라는 걸 그 무렵 언젠가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가 1980년대, 비 오는 날 죽음의 계곡에 들어서면 일단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하던 때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두려움이 갑자기 밀려왔다. 그러면서 주저 앉으려는데 짙은 운무 속에 설악의 수 많은 폭포들이 다시금 내 시야에 어렴풋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말로는 표현 못할 정말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인간의 俗界에서는 볼 수 없는 仙界의 풍경이었다. 그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어도 좋다.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것. 그리고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환상 속의 침잠(沈潛) 이랄까, 그 상태로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편안한 생각이 들면서 나는 드러눕고 싶어졌다. 드러누우려 했을 것이다. 그 때 누군가 나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가 곁에 있을리가 없다. 그런데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벼락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또 벼락처럼 머리를 때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래저래 어떻게 어떻게 해서 나는 살았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어떻게 내려왔는지 그 과정은 알 수가 없다. 폭우 속을 허겁지겁 내려왔을 것인데, 권금성으로 어떻게 내려왔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상당한 공포심, 그리고 코스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살기위한 생존 몸부림의 형태로 달리고 구르고했을 것이다.
그 때의 그 죽음의 계곡에서의 설악산 속살의 환상적인 모습과 공포심, 절박감은 지금도 가끔씩 꿈으로 다가오곤 한다. 하지만 그 꿈은 개운치가 않다. 꿈은 언제나 절박한 상태로 끝을 맺기 때문이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겼거나, 드물게 우환 같은 일이 생기기 전 꾸어지는 꿈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악몽인 셈이다.'村 學 究'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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