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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성급해졌다. 어제 모처럼 오른 청계산에서 봄이 이미왔다고 단정해버린 것이다. 포일리 '주현미 집' 인근에서 오른 청계산 산길은 겨울의 그것이 아니었다. 얼음이 녹아내려 질펀해진 초봄의 산길이었다. 질펀거리는 산길은 분명 봄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매봉 쪽으로 이어지는 정상 능선 길에 부는 바람도 그랬다. 겨울이 녹아내리는 선선한 봄바람이었다.
봄이 왔구나 생각들하니 게으름이 솔솔 피어난다. 게다가 모두들 아침을 거른 탓인지 어디서 자리잡아 뭘 먹자고들 한다. 결국 매봉 쪽에서 꺽어 청계사 쪽으로 내려와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았다.
평촌 사는 후배의 배낭이 좀 무겁게 보인다 했더니, 뭘 바리바리 싸왔다. 문어가 나왔다. 후배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또 꺼내놓는 건, 어라, 다름이 아니라 물회다. 야채, 횟감과 함께 양념도 별도로 장만해왔다. 비닐장갑을 끼더니 그걸 손으로 무친다. 산에서 물회를 먹는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緣木求魚, 이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후배는 그에다 따끈하게 데운 정종을 내놓았고, 다른 후배는 오뎅탕에 소주를 꺼내 놓았다. 막걸리까지 겻들이니 술이 석 種이었지만, 오뎅탕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을 때, 술은 이미 바닥이 났다.
청계사 인근 후배 텃밭에서는 돼지고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는 지인들 몇몇과 돼지 반마리를 잡았다고 이미 선언을 해 놓은 터였다. 돼지고기를 굽기도 하고 김치를 넣어 두루치기도 하고...술판이 무르익어 갔다.
후배 덕에 아무튼 잘 먹고 잘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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