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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25) 북한 이웅평 상위 귀순(1983)
    today in world history 2020. 2. 25. 11:51

    나라가 코로나바이러스 등으로 거의 망국지경에 이르고 있어서인지, 이즈음 유독 지나 간 날들이 하루하루가 새록새록 기억에 잡힌다. 옛 기록을 들춰보니 오늘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유난히 뜻 깊은 날이다. 바로 오늘, 2월 25일이 1983년 북한의 이웅평(1954-2002) 상위(대위)가 미그-19기를 몰고 대한민국 땅에 불시착해 귀순한 날이기 때문이다.

    37년의 오늘이지만, 그 날이 기억에 생생하다. 아마도 토 아니면 일요일이었을 것인데, 민방위본부에서 갑자기 비상경보를 발령한다. "이것은 실제상황"임을 반복해 강조하면서 "북한의 공습으로 인해 서울. 인천. 경기지역에 비상경계경보를 발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과천에서 살았는데, 공습경보 방송에 놀라 밖으로 나와보니 인천 쪽 하늘에서 뭔가 비행폭음이 들려오는 가운데, 놀란 사람들이 밖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게 이웅평 대위의 귀순비행에 따른 것이었음을 알게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 때까지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기록을 보니 그 때 이웅평 대위가 보상금으로 받은 돈이 15억 6천만 원이었는데, 지금으로 환산하면 천 억이 훨씬 넘는 거액이라고 한다. 이런 산출의 근거로 당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1채 가격이 2,000만 원이었음을 들고있는데, 이는 내 개인적인 경험과 비슷하다. 1980년 결혼하고 도곡동으로 이사오려할 때 은마아파트를 살까말까로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분양가가 1,450만 원이었고, 미분양 분이 꽤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한참 든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뒤숭숭한 날들인데, 오늘 어쩌다 37년 전 이웅평 귀순사건을 접하고 갑자기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지지고 볶고 살아도, 또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도 그래도 그 때가 그나마 살기 좋았던 시절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굳이 추억이라는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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