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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馬山高 교가, 그 어제와 오늘
    내 고향 馬山 2021. 3. 15. 08:51

    (오늘은 마산 3. 15의거 6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날에 갑자기 옛 모교의 교가가 생각난 것은 61년 전 이날, 죽음을 무릅쓰고 부패한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주의의 기치를 들고 거리에 나서 장렬하게 산화한 선배 영령들에 대한 추모의 심정 때문입니다.)

     

     

    "태백의 정기서려/마재에 맺고..."로 시작되는 모교 마산고 교가는 다른 학교의 것들에 비해 좀 무겁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윤이상(尹伊桑)이라는 세계적인 거장이 작곡한 것이라 걸 감안하더라도 왠지 좀 무게가 느껴지고 부르기가 그리 쉽지 않은 교가라는 것은 동문들 간에 어느 정도 공유되는 느낌이지 않나 싶다.

     

    모교관련 기념식이나 모임, 그리고 운동경기 응원석에서 함께 부를 때 특히 그렇다. 이럴 경우 선창(先唱)이 중요하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선창자가 톤을 잘못 잡으면 교가를 망치는 경우를 다들 몇 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모교 교가가 부르기, 특히 따라 부르기가 쉽지 않다 해서 교가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마산고 교가를 잘 부르면 한국의 전 고등학교를 털어 이만큼 빼어난 교가가 없다는 것은 마산고 교가의 큰 자랑이다.

     

    마산고 교가를 오케스트라 협주곡으로 들어보면 그런 점이 드러난다. 교가를 유행가처럼 쉽게 부르지 말라는 것, 예의를 갖춰 모교를 사랑하는 한 마음으로 부르라는 것. 아마도 윤이상 선생은 교가를 작곡할 적에 이런 정신을 교가에 깃들이고자 부르기에 좀 어렵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이상 선생은 생전에 자신이 전국적으로 지은 19개의 교가 가운데 마산고 교가를 부산고, 고려대 교가와 함께 3대교가로 자랑했다고 한다.

     

    교가의 가사는 이상철(李相喆, 1914-1961) 선생이 지었다. 주지하다시피 이상철 선생은 마산고를 전국의 명문반열에 올려놓은 초대 교장이다. 1950년 마산고가 마산중에서 분리되면서 첫 교장으로 부임한 이상철 선생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선생님을 교사로 초치해 교육의 질적 향상을 누구보다 앞장서 도모했던 분이다. 윤이상(1917-1995) 선생도 그들 중의 한 분이다. 국어 쪽에서도 김춘수. 김남조 시인 등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았다. 이상철 선생은 그러나 마산고 교가의 글을 그들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썼다. 그 이유는 마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교가의 첫 구절에 담겨져 있다. "태백의 정기서려/마재에 맺고..."의 '마재'가 바로 그것이다. 마재는 바로 마산의 원형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마재는 두척(斗尺)에서 나온다. 두척은 미곡의 양을 재는 큰 됫박(斗), 그리고 저울(尺)이니, 곧 지금의 무학산(舞鶴山)의 원래 이름인 두척(斗尺山)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은 마산의 옛 곳인 합포에 조창(漕倉)이 있어 쌀이 높이 쌓인 지역이란 데서 유래된 것이다. 이 두척을 순 우리말로 하면 '말자'이고 이 말자가 후에 마재로 되고 이게 다시 한자어인 마산으로 음운이 변한 것이다.

     

    마산의 진산인 두척산을 무학산으로 바꿔 부른 것은 일본인들이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일본인들이 두척산에 일본인 공동묘지를 조성하면서부터인데, 이게 해방 후에도 여전히 그렇게 불려 져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상철 선생이 마고 교가에 '마재'라는 말을 넣은 것은 곧 민족정신과 애향심을 바탕으로 한 마산고의 교육이념과 위상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상철. 윤이상 선생 모두 마산 분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 분 모두 통영출신으로, 이상철 선생이 윤이상 선생보다 세살 위였음에도 서로 친구처럼 지내며 마산을 아끼고 사랑했다.

     

    마산고 개교가 올해로 85주년이니 교가도 그 역사만큼 80년이 돼야할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의 교가를 교가로 칠 수는 없으니 지금 마고 교가의 역사는 그보다 짧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마산고가 있었으니 그 때의 교가를 한번 되짚어보는 것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일제시 마고 교가가 정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1938년 10월로, 개교 후 2년이 지난 시점이다. 작사자는 당시 일본어와 한문을 가르쳤던 코다마이고, 작곡은 노부도키로 전해진다. 교가 가사는 "북으로/무학산을 등지고/남으로/이어지는/달의 해안..."으로 역시 '무학산'을 강조하고 있다. 이 교가의 곡조가 어떤 것인지에 관해 궁금했는데, 언젠가 마산에서 대선배인 공우열 선생(마산고 3회)을 통해 들어본 적이 있다. 일본풍이 느껴지는 곡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교가는 1945년 해방 전까지 불리었다. 그러면 1945년부터 지금의 교가가 만들어진 1950년까지의 교가가 궁금해진다. 일본사람이 만든 교가가 폐기되었을 지언정 달리 부르는 교가는 있었을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몇 가지 얘기가 전하는데, 가장 유력한 것으로 1945년 당시 마산중 음악교사로 있던 홍은혜 선생이 만든 노래를 교가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노래는 본시 교가가 아닌 '애교가'로 만들어진 노래였다. 애교가를 교가로 부르게 된 연유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 싶다. 혼란했던 그 시기 아닌가. 이 애교가도 역시 가사에 무학산이 나온다.

     

    "합포라 바닷가의/잔잔한 물결과/푸른 숲에 깊이 싸인/무학산을 등지니..." 이 노래의 가사는 홍은혜 선생의 오빠인 홍정은 선생이 지었다. 홍은혜 선생은 잘 알려진 대로 우리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손원일 제독의 부인으로, 이 애교가를 만들 당시 손 제독은 해군사령관이었다. 100세를 넘긴 홍은혜 선생은 현재 서울 대방동에 거주하고 계신다. 홍정은 선생은 마산고 대 선배님이다. 미국 아메리카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딴 뒤 해방 후 귀국해 마산 미군정청장관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지나온 세월을 더듬고 보니 마산고 교가도 긴 역사의 소용돌이를 돌고 돌아 흘러온 흔적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모교의 교가를 새삼 한번 불러보고도 싶고, 조용히 한번 듣고도 싶다. 마침 마산고 교가를 장중하게 들려주는 사이트가 한곳 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마산고에서 음악을 가르친 김귀자 선생님이 운영하고 있는 '김귀자의 음악살롱'이란 사이트(http://kwija.tistory.com/19)다.

    여기엔 김귀자 선생님이 마산고에 근속하고 있을 당시 자신이 지휘하던 마산고합창단이 부르는 교가가 나온다. 쉽게 듣기 어려운, 잘 부르는 교가다. 교가와 함께 응원가, 졸업가도 있다. 한번들 들어가 들어보시기 바란다.

     

     

     

     

     

    kwija.tistory.com/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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