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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로지' 이준익의 영화 '玆山魚譜'
    컬 렉 션 2021. 4. 24. 07:24

    영화가 끝나고 좀 앉아 있었다. 한편의 묵직한 수묵화를 보듯, 영화에 푹 빠져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도대체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궁금했다. '자산어보(玆山魚譜)'라는 타이틀과 정약전이라는 인물로써 대강의 내용은 점쳐졌지만, 어찌보면 해양생물학의 일종의 도감일 수 있는 그 내용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고 어떻게 결말을 지을 것인가가 궁금했던 것이다.

     

    내 느낌은 이런 것이다. 이 영화는 '자산어보'를 바탕으로 그 안에 '장창대'라는 인물을 모티브로 한 이준익 감독의 창작물이라는 것. 영화를 내내 보면서 언뜻 신동엽 시인의 장시 '금강'이 떠올려진 것도 어찌보면 같은 맥락이다. '금강'에 申하늬라는 가공의 인물이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이 대하시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겹쳐졌던 것인데, 이는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고 느낌이다.

    창대(昌大)가 영화에서 총각의 청년어부로 묘사되고 있는 건 정말 이준익 감독의 기발한 발상이다. 정약전 '자산어보'의 서문에 나오는 장창대, 혹은 장덕순은 청년어부가 아니다. 흑산도 약전의 유배지 마을의 글도 좀 읽고 꽤 젊잖은, 어느 누가 묘사했든 '한미한 양반' 출신 분위기의 인물로 적혀있다. 창대가 청년이라는 묘사는 어느 구절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준익 감독이 그럼에도 영화에서 창대를 청년어부로 의인화한 것은 약전의 '자산어보' 집필과정에서의 역동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나는 풀이하고 있다. 말하자면 '자산어보'의 바탕이 되는 채취와 고기잡이 등 각종 어로작업의 역동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인데, 그런 역할을 늙고 젊잖은 창대가 어찌할 수 있겠는가.

    영화는 '자산어보'에 깃든 정약전의 실사구시의 애민정신과 평등한 세상의 추구를 강조하고 있고, 여기에 젊은 창대의 학문을 통한 입신양명 과정에서의 쓴맛, 단맛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약전은 "배운대로 못 살바에는 생긴대로 살겠다"는 창대의 쓰라린 절규에 묘하게 대비되기도 하면서 오히려 약간은 방관자(?)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 게 이 영화가 갖는 또 다른 재미의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영화에서 약전이 유배지인 흑산도와 무의도에서 가거댁을 후실로 삼아 사랑을 나누고 빈한하나마 가정을 이루고 있는 장면은, 약전의 동생 다산 정약용을 연상케 한다. 약용이 유배지 강진에서 진솔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둘 사이에 홍임이라는 딸을 가진 것처럼.

    양반과 상놈이 갈리고, 그리고 공평하지 못한 세상에 그악스럽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몸부림이 얽혀지는 이런 영화는 역시 흑백이 제격이라는 걸 이준익 감독은 꿰뚫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전반에 걸쳐 자주 나오는 짙은 먹물글씨들과 검은 파도, 이 극명하면서도 묘한 대비를 이루는 장면은 흑백으로의 묘사만이 그 깊이를 더해줄 수 있는 것이다. 흑백영상을 택한 이준익 감독의 이런 연출력을 칭찬해주고 싶다. '오로지' 이준익의 영화 '자산어보'라 할까.

    사족삼아 한 가지 재미있게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나주목사로 나오는 명계남의 연기다. 나는 이 양반에 대한 인상이 그닥 좋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명계남의 연기는 일품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영화 말미 엔딩 크레딧의 캐스팅 부분에 명계남의 이름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함께 영화를 본 선영 선배는 명계남 이름을 봤다고 하는데, 나는 신경을 쓰고 보려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이 글을 포스팅한 후 거의 영화광급인 한 친구로부터 지적이 있었다. 명계남이 '동방우'로 개명을 했다는 것이고 그 이름은 엔딩 크레딧에 나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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