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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운길산, 그리고 故 김홍섭 판사사람 2021. 5. 3. 16:51
운길산에서 '바람'을 맞았다.
그 바람은 순전히 내탓이다. 날짜를 착각한 것이다.
운길산 역에서 3일 오늘 아침 11시에 선배와 만나기로 했다.
선배가 운길산 근처 집에 관심이 많다.
집도 좀 알아보고, 다산 유적지를 비롯해 인근의 이런 저런 곳을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약속이 오늘이 아니라 5일, 수요일이었다.
선배와 통화를 하면서 자칫 내가 우길 뻔 했다.
가만 생각을 해 보니 내가 틀렸다.
이런 증세가 근자에 좀 잦다. 그러니 순전히 내 탓이다.
그래도 기왕에 왔으니 다산유적지 쪽으로 좀 걸어볼까 하는데,
선배가 광화문으로 나오라 한다. 점심이나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전철을 '빠꾸'로 타고 광화문으로 나갔다.
오늘 어쩌다 이리 됐지만, 운길산 온 건 사실이다.
그러니 '어쨌든 운길산'이다.
선배와 운길산에서 만날 약속을 한 나는 어떤 기대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운길산 역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 기대였다.
그 기대감에 약속 일자를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는 故 김홍섭(1915-1965) 판사로, '사도법관'으로 알려진 분이다.
대법원 판사를 지낸 법관으로, 프로테스탄트와 불교를 섭렵하고 가톨릭에 귀의한
가톨릭 사상가이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것에 기초한 재판 철학으로
실천 신앙을 중시한 빈자의 법관으로 널리 회자되던 분이다.
그 분이 운길산 역에 계셨다.
운길산 역에 계신 그 분을 만난 게 지난 2015년 2월 4일이다.
운길산을 오르려 아침 일찍 운길산 역에 도착해, 역내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고있는데,
바로 내 앞에 그 분이 서 계셨다.
깜짝 놀랐다. 그 분이 여기 서 계실리가 없다.
그 분은 사진 속에 서 있었다.
누군가 그 분의 전기를 썼다. 그 책의 표지가 큰 액자로 매점에 걸려있었던 것이다.
사진 속의 그 분은 실체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로서는 큰 감동이었다.
그 때 김홍섭 판사를 대하면서 나는 또 다른 어떤 한 분을 떠 올렸다.
故 김정훈 부제.
부제 서품을 받고 1977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룩으로 유학 중 알프스 등반을 하다 추락해
30세의 나이로 요절한 분이다.
그의 유고를 모은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란 책을 남겼다.
내가 1970년대 말 영세를 받고 제일 먼저 본 책이 이 책이다.
그러니 나의 가톨릭 신앙에 적잖은 영향을 준 분이다.
그 김정훈(1947-1977) 부제가 바로 김홍섭 판사의 아들이다.
김홍섭 판사와 그 아들 김정훈 부제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오늘 바쁜 걸음으로 나는 운길산 역에 왔다.
하지만 그 분은 운길산 역에 계시지 않았다.
그럴리가 없다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 보았으나 없었다. 아예 매점 자체가 폐쇄되고 없었다.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운길산 역에도 변화가 생겼고, 그 와중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김홍섭 판사 사진이 걸려있는 벽면 앞에 한참을 서성거렸다.
안타까웠다.
묵주기도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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