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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집 '松石軒'과 孝, 그리고 '父子有親'사람 2021. 5. 5. 07:08
'父子有親.'
옛날 VHS 비디오 테입이다. 옛 물건들 꾸러미 속에서 나왔다.
테입 설명을 읽어보니 기억이 난다. 1993년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 기자실에서 나눠준 것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부친 홍조 옹이 계셨는데, 두 부자 간의 돈독한 얘기가 심심찮게 화제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다. 두 부자 간의 그런 관계의 밑 바탕은 결국 김 대통령의 효심이었을 것이다.
김 대통령의 효심이 그만큼 남 달랐다는 것이다.
'부자유친,' 이 테입은 당시 경북 봉화 선돌마을의 300년 된 고택 '송석헌'에서 연로한 아버님을 봉양하며 살던 권헌조(權憲祖; 1930-2010) 씨의 생활을 담은 孝行의 다큐멘터리 기록물로, 1993년 MBC에서 방영한 내용을 담고있다. 이 테입은 아마 김 대통령이 그 다큐멘터리를 본 후, 별도로 제작해 기자들에게 나눠주라고 했을 개연성이 높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이 테입을 나눠주려 기자실에 들렀던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그런 내용을 들은 기억이 있다. 이 테입을 본 기자들 사이에서 감동적이었다는 말들이 나온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松石軒의 현재의 모습
'송석헌(松石軒)'은 안동 권씨 검교공파 사복재 가문의 300년이 넘은 오래 된 집이다.
이 집에서 8대 종손인 헌조 씨는 부모를 모시고 공양하며 살고 있었다.
대대로 유학을 바탕으로 한 선비 가문에서 효의 예와 도리를 익힌 헌조 씨의 부모에 대한 효행은 눈물 겨울 정도로 정성스럽다. 노환으로 몸져 누운 모친과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글만 읽고있는 아버지 정선 옹을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피면서, 효의 예와 도리를 다 한다.
혹여 소화를 못 시킬까봐 음식을 씹어 부모로 하여금 들게하는 장면에선 시대를 초월한 효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어쩌다 잠시 외출할 경우, 반드시 아버지에게 절을 올리며 고하고, 돌아와서도 그런다.
출타시 아버지가 준 용채는 한푼의 허트림없이 쓰고 그 내용을 아버지에게 고한다. 한치의 어긋남이 없다.
권헌조 옹(1930-2010)
이 다큐멘터리 테입은 헌조 씨의 부친 권정선 옹의 1992년 별세까지를 담고있다. 그 뒷 애기는 이렇다.
헌조 씨는 송석헌에서 아버지를 보낸 후 1999년 어머니마저 여윈다. 그리고 그 또한 2010년 세상을 뜬다. 그 후 서울에서 살던 그의 아들 동재 씨가 송석헌을 지키다, 그마저도 이듬해 2011년 아버지를 따라 간다. 그러니까 '송석헌' 고택은 안동 권씨 3대의 生沒의 자취가 너울거린다. 변치않는 선비정신과 효행이 그 바탕이다.
헌조 씨의 부친 권정선 옹
모두 80 나이를 넘겼던 정선. 헌조 부자와 달리 동재 씨는 그런 수명을 갖지 못하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뜬다. 그바람에 송석헌에서의 생활상은 그리 많이 알려져있지 않은 게 좀 아쉽다. 송석헌 얘기를 듣고 본 많은 사람들 중에 그런 심정을 갖는 분들이 많다. 송석헌을 다룬 영상과 글들에서 동재 씨와 관련된 부분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유독 한 장면이 떠 올려진다.
헌조 씨의 아들 동재 씨
헌조 씨는 아버지 정선 옹을 송석헌 뒤 언덕에 장사지낸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배례를 한다. 70줄 후반 나이로 매일 부모 묘소를 언덕을 오르내리며 성묘하기에는 무척 힘이 들었을 것이다. 이를 본 동재 씨가 집에서 조부모 묘소로 이어지는 꽤 긴 언덕 산길을 아버지가 오르내리기 쉽도록 계단을 조성해 놓은 장면이다. 국가민속문화재로 보수공사를 마친 지금의 송석헌 뒤로 그 계단 길이 나 있는데, 유난히 아름답게 보인다.
지금 송석헌은 헌조 옹의 막내 아들 내외가 살면서 조상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비디오 테입을 보려면 플레이어가 있어야 한다. 그런 플레이어는 이제 단종됐다. 테입을 보려면 디지털정비로 재생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송석헌을 검색을 해 보면 이 오래 된 집과 권헌조 옹에 대한 여러 영상과 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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