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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지 수선을 맡기며
    村 學 究 2021. 9. 30. 10:18

    어제, 바지 수선하러 동네 옷수선 집을 찾아가다 비를 만났다.

    바지 두벌이 담겨진 쇼핑백을 들고 길거리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내 처지, 내 모습을 가만 생각해보니 실실 웃음이 났다.

    바지 허리 늘리는 수선값도 만만찮으니 차라리 바지를 새로 사면 될 일이었다.

    근데 나는 왜 굳이 옷을 수선해 입으려는 고집을 아내에게 피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든 옷이 거의 다 그렇다. 맞는 게 없다.

    나름 옷에 몸을 맞추면 되겠지 생각하며 입어 보니, 한 서너끼 정도 굶으면 얼추 맞을 것 같았다.

    아침에 아내와 이런 저런 궁리를 해도 딱히 마땅한 답이 나오질 않았다.

    고쳐 입든지, 아니면 새 바지를 사 입던지 둘 중의 하나인데,

    그 둘 중 하나 선택하는 걸 놓고 아내와 생각을 맞추는 게 그리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 일 나가고 난 뒤 집에 멍청히 있다가 나 혼자 해치우자며 그냥 바지를 들고 나온 길이었다.

    동네 옷수선하는 집 찾기도 쉽지 않다. 검색 끝에 찾은 수선집은 문이 잠겨 있었다.

    비가 멎어 어찌할까를 망설이고 있는 중에 능곡교회 맞은 편 골목에 ‘옷수선’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내가 모처럼의 손님이었던지 주인 아주머니가 반색을 한다.

    바지를 보더니 “시접이 있네요. 그럼 간단해요” 한다.

    시접이라니? 했더니 바지를 들어 보여준다.

    바지 안쪽 허리 한 가운데 있는 여분의 헝겁인데, 허리춤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간단한 작업이예요. 얼마 안 걸리니 이따 저녁답에 찾으러 오세요.”

    아주머니의 언변이 시원시원했다.

     

    여름이 지나가면서 올 가을 겨울에 입을 추동 바지는 이즈음 나를 좀 울적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느낌을 갖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입을 옷, 그러니까 내 몸에 익숙한 옷들이 내 몸과 같아져 간다는 것.

    아무튼 시원시원한 수선집 아주머니로 인해 갈아앉았던 기분이 말끔해졌다.

     

    그 아주머니는 내 바지가 아닌 나를 ‘수선’하는 것 같기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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