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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의 ‘弔花’
    obituary 2021. 11. 25. 18:33

    전두환과 박근혜. 

    둘 다 대통령을 역임했지만, 이름 앞에 붙는 ‘전 대통령’이라는 호칭이 새삼스럽고 어색하다.

    박근혜는 국정농단이라는 죄명아래 긴 영어(囹圄)의 족쇄에 갖혀 산지 오래됐고,

    전두환은 5.18 학살과 12.12 내란이라는 죄명으로 갇혀 살다시피 했다. 

    그러니 둘 다 사실상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지위가 박탈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둘에게 씌어진 이 죄명을 물론 본인들은 부정한다. 국민적 여론 또한 거의 반반으로 나뉘어져 시끄럽다.

    하지만 현 정권 하의 현실은 냉정하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현실이라는 것, 

    그것은 오로지 권력의 부침으로서만 설명되어지는 묘한 속성의 뜬구름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李白이 인생을 얘기하며 읊고있는 한 싯귀처럼,

    아침엔 푸른 실이었다가 저녁이면 백설의 하얀 눈같은(朝如靑絲 暮如雪) 것이다.

    전두환에게 권력과 현실의 이런 속성은 그가 90 나이로 별세하면서 

    허무함과 추잡함의 정점에 다달은 것 같다.

    그의 ‘죄가’가 부풀리어 다시 도마 위에 올려지고, 개나 소나 할 것없이 부화뇌동으로 그에게 욕을 해댄다.

    그 죽음에 어찌 한이 없을 것인가. 그럼에도 권력과 그 류들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장례를 둘러싸고는 고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갖은 모욕적인 언사가 나온다.

    결국 5일 간의 가족장 자리에서나마 고인은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 앞에서 노쇠하고 피곤한 몸을 눕혔다. 

    그건 안식일까, 아니면 또 다른 한 여정의 시작일까. 

    그런 전두환의 마지막을 박근혜가 배웅하고 있다.

    박근혜가 전두환의 빈소에 조화를 보낸 것이다. 전.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유일한 조화다.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전두환과의 관계가 그닥 좋지않았던 박근혜로서도 이와 관련해 마음 씀씀이가 좀 고단했을 것이다.

     

     

     

     

    박근혜의 조화에는 ‘박근혜’라는 이름 석자만 적혀있다. ‘전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도 달지 않았다.

    이것이 눈여겨 볼 대목이 아닌가 싶다.

    자연인 박근혜로서 전두환을 조문하는 것이라는 합의가 담겨져있는 조화가 아닌가하는 점에서다. 

    박근혜의 이런 조화를 놓고, 이런저런 관측이 나온다.

    둘 간의 사이가 그동안 좋지 않았음을 전제로 해, 박근혜가 그 매듭을 지은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둘의 불화는 결국 권력의 부침 속에서 생겨난 것인 만큼 죽음 앞에서는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 한편으로는 서로의 처지를 감싸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의미가 담긴 조화가 아닌가 하는 

    좀 멜랑꼬릴리한 생각도 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박근혜의 지금 처지가 고인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국정농단이라는 어마어마하고 해괴한 죄목으로 감옥에 갖혀있는 게, 

    삼십 수년을 汚辱의 세월 속에 살다 생을 달리한 전두환과 오십보 백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박근혜의 조화는 일반적 정치적 해석과는 달리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어루만져주고 있는,

    느낌을 주면서 박근혜의 나름 진솔한 의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넣지않고 동그마니 이름 석자만 적은 조화 그 자체로서도 그렇다. 

    전두환이나 박근혜나 둘 다 모두 사실상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박탈 당했다는 점에서, 

    박근혜는 조화에서 그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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