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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메기, 혹은 곰치탕먹 거리 2011. 1. 24. 16:19
부산에 사는 매제가 있다.
부산 토박이인데, 생선회에 관해서는 부산말로 '빠꿈이'다.
십여년 전인가, 부산 근무할 때 그 매제집에 있었다.
가끔 시내서 만나 같이 들어가고 했는데,
어떨 때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들르는데가 있었다.
집이 송도였는데, 도심을 벗어난 어디 쯤인가에 있는 횟집이다.
매제는 차를 몰고 그 횟집 앞에 도착해도 내리질 않고 뭔가를 살핀다.
횟집 앞에 있는 수족관을 들여다 보다 뭔가 있으면 들어가는 것이었다.
매제가 그 횟집 수족관에서 찾는 생선이 바로 물메기다.
나도 바닷가 출신이라 생선에 대해서는 좀 알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물메기가 뭔지는 몰랐다.
물메기 한 마리 값이 그 때 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걸 회로 썰어 같이 먹었다.
과묵하면서 표정이 별로 없는 매제지만 물메기가 마침 있고,
그 걸 회로 먹을 때면 눈빛이 달랐다. 말도 많아지고.
이 거 진짜 맛있소.
이 거는 양식이 절대 없십니더.
모도 자연산이지요.
자, 소주 한잔하고 한점 집어보소.
그 때 물메기 그 맛을 알았다.
회로 처음 먹었으니 물메기에 대한 첫 기억도 물메기 회다.
그 맛은 정말 부드럽고 고소했다.
씹을 것도 없이 그냥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껍질과 살이 그만큼 연해서인데,
부드러움이 더해지는 것은 아무래도 그 고소한 맛 때문일 것이다.
물메기는 피부와 살이 그만큼 연하다. 그래서 살아있는,
이른바 생물 물메기가 아니면 회로 먹기가 어렵다.
회를 쳐 좀 뒀다 먹으려면 막걸리에 담근다든가,
아니면 냉동실에서 살폿 얼려 먹어야 그나마 그 맛을 볼 수 있다.
그 물메기를 근자에 몇번 접하면서 그 맛에 푹 빠져들고 있다.
마산에 가면 토박이들이 잘 가는 오래 된 식당이 있다.
남성동 파출소 왼쪽 골목에 있는 '홍화식당'이다.
이 집은 제철 생선으로 된 각종 마산요리를 맛나게 하기로 소문난 집이다.
생선요리와 함께 마산식으로 끓여주는 소고기국이 또한 일품이다.
지난 달, 그 곳을 들렀다.
주인 아주머니, 반갑게 맞으며 "아이구, 마츰 잘 오셨네" 한다.
싱싱한 생물 물메기가 방금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 걸로 물메기탕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가타부타 토를 달 필요가 없다.
물메기탕이 나오기 전에 무어 없소이까 했더니,
역시 생물 호래기가 있단다. 겨울철 횟감으로 그만한 게 또 있을까.
매콤새콤한 초장에 호래기 한 두어마리를 푹 찍어 한 입에 넣는다.
입 안이 난리다. 사각사각, 오독오독 씹히면서도 포만감을 주는 맛.
초장과 함께 어우러지니 말 그대로 착착 달라 붙는 맛이다.
소주와 호래기 회로 한 잔을 걸치고 나니 나오는 게 바로 물메기탕이다.
'홍화식당' 물메기탕은 국물이 대구탕 처럼 담백한 이른바 '지리'식이다.
따로 들어가는 것도 별로 없다.
파, 무우에 경상도 말로 '모재기'(모자반)라 부르는 해초류 정도.
시원한 국물 맛이다. 대구탕도 좋고 아구탕도 좋다. 다 좋다.
물메기탕도 결코 빠지지 않는다. 안 그래도 부드러운 살 아니던가.
그 게 뼈가지와 함께 푹 끓여지니 흐물흐물한 게, 무슨 연한 젤리를 삼키는 맛이다.
'홍화식당'을 나오는데, 아주머니가 누구누구를 얘기한다. 서울에 계시는 대선배님이다.
그 선배님이 물메기탕 먹으려 올 때가 됐는데 안 온다고 한다.
서울 와서 전화를 드렸더니 잠시 말씀이 없다.
아마도 침 삼키시느라 그랬는지 모르겠다.
마산 '홍화식당'이 자꾸 눈에 아른거리는 이즈음인데,
서울에서도 물메기탕을 맛있게 하는 집을 알았다.
경복궁 역 부근에 있는 식당인데, 꽤나 알려진 곳이다.
마산 '홍화식당'이 남해식이라면, 그 집은 동해식이다.
경북 영덕이나 강구 쪽에서 잡히는 여러 해산물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물메기지만 동해 쪽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곰치라고 부른다. 그래서 물메기탕도 그 집에선 곰치탕이다.
며칠 전, 독일에서 한 고등학교 동창이 왔다는 소식을 친구로부터 들었다.
근데 그 동창이 국물 얼큰한 그 무엇을 찾는다는 것.
그럼 물메기탕 만한 게 있을까.
그래서 간 곳이 그 집이다.
지난 12월 초에 한번 들러 그 집 물메기탕을 먹은 기억이 난 것이다.
그 때는 솔직히 그저 그랬다. 무슨 얘기를 들으려 어르신들을 모셔갔기 때문에
음식에 관해 신경을 덜 기우린 탓도 있을 것이다.
물메기탕에 앞서 소주 한 잔 하자.
세꼬시회가 메뉴에 있었다. 그저 그렇겠지하고 시켰다.
그런데 이 집 세꼬시회는 좀 특히했다. 가지수가 세가지나 됐다.
두 가지는 알겠는데, 하나는 잘 모르겠다. 물어보니 물가자미(미주구리)라는 것이다.
이 세꼬시 맛이 특이하면서 맛이 좋았다. 그 게 좋으면 다른 생선들도 맛있어지는 것이다.
호감이 간 것은 회가 무척 싱싱하다는 것. 그에 곁들여진 각종 채소도 싱싱하고.
회를 많이 먹었기에 물메기탕은 일인분 만 시켰다.
다른 집과 달리 일인분도 아주 친절하게 갖다 준다.
이 집 물메기탕은 마산의 그 것과는 달리 매운탕식이다.
둘 간의 차이는 하나가 시원하다면 하나는 얼큰하다는 것이다.
표현상 그렇지 기실 두 맛은 결국 하나로 통하는 것이지만.
얼큰하고 좋았다. 친구 하나가 일인분 나눠먹기가 뭐하다며
밥 두 그릇을 물메기탕에 넣어 버렸다. 말아 먹자는 것이다.
종업원이 그 걸 보더니 국물을 더 갖다 준다.
그 걸로 세명이 저녁삼아 먹었다. 아, 그런데 참 묘한 맛이 났다.
뭐랄까, 어릴 때 고향에서 많이 먹던 김치밥국 같은 맛이 나는 것이었다.
한 친구가 그 말을 하길래 먹어보니 정말 그랬다.
그 집을 나오면서 우리들은 주인 아주머니와 하이 파이브를 했다.
맛 있습니다. 맛 있습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그저께 다시 그 집엘 갔다.
지난 번과 같이 시켜 먹었다.
세꼬시 대짜 한 접시.
그러나 물메기탕은 2인분을 시켰다.
아무래도 일인분으로는 싸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먹고 나오면서 이번에는 주인 아주머니와 하이 파이브를 하지 않았다.
이미 단골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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