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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임금과 정약용의 담배 사랑먹 거리 2019. 3. 4. 07:28
1600년대 초 일본으로부터 담배가 들어 온 이래, 조선은 과장을 좀 보태 '골초'의 나라가 되었다. 하멜이 쓴 '표류기'에 이런 대목이 나올 정도다. "현재 조선인들은 사이에는 담배가 매우 성행하여 어린이들까지도 4,5세 때에 이미 이를 배우기 시작하여 그래서 남녀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담배에 대한 인기가 이럴 정도이니, 임금이 모를 리가 없다. 담배를 즐기는 임금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조 임금의 '담배 사랑'은 대단한 것이어서 담배를 예찬하는 글까지 손수 지을 정도였다. '남령초 책문'에서 정조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백방으로 약을 구했으나 오로지 이 남령초에서만 도움을 얻었다. 화기(火氣)로 차가운 담(痰)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고, 연기의 진액이 폐를 윤택하게 하여 밤잠을 편안히 잘 수 있었다. 뒤에는 '갑이냐 을이냐를 교정하여 붓방아를 찧을 때에 생각을 짜내느라 고심하는 고뇌를 편안하게 누그러뜨리는 것도 그 힘이다." 여기서 남령초(南靈草)는 담배를 뜻하는 말이다. 담배가 몸 뿐만 아니라 '무심초'로서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뜻의 글이다.
정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담배가 백성들 사이에서도 널리 피어지기를 권장하는 글도 지었다. "'이 풀이 이 시대에 출현한 것을 보면, 천지의 마음을 엿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 따라서 남령초를 월령에 싣고 의서에 기록하도록 명령한다. 우리 강토의 백성들에게 베풀어 그 혜택을 함께 하고 그 효과를 확산시켜, 천지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한다." 담배와 관련해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흡연으로 인한 건강의 폐해를 권하고 있는 것이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개혁군주인 정조에게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실과 바늘과의 관계다. 그만큼 정조는 정약용를 아꼈고 총애했다는 얘기다. 이 둘간의 관계를 맺어주고 돈독하게 해 준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담배다. 정조는 신하들로 하여금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에 시 한 수를 짓도록 하는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약용도 정조에 버금가는 애연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남긴 많은 글들 가운데, 담배에 관한 시 한 편이 포함되고 있는데서 그가 얼마만큼 담배를 사랑했는지가 느껴진다.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돼 경상도 장기로 유배를 갈 때 지은 시로 제목이 '담배'(煙)'다.
'육우(陸羽)가 지은 다경(茶經)도 좋은 것이고(陸羽茶經好) / 유령(劉伶)의 주덕송(酒德頌)도 기특하지만(劉伶酒頌奇} / 지금 시대에 새로 출현한 담배야말로(淡婆今始出} / 유배객을 가장 잘 알아주네(遷客最相知) / 가늘게 들이쉴 땐 강한 향기 젖어들고(細吸涵芳烈) / 슬며시 내뿜을 땐 가녀린 연기가 피어나네(微噴看裊絲) / 객지의 잠자리가 늘 편치 못하여(旅眠常不穩) / 봄날은 갈수록 더디기만 하구나(春日更遲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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