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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村 學 究 2022. 4. 8. 14:11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으로부터 듣는 말이 있었다. 왜 그렇게 허리에다 머리까지 구부정하게 걸어다니냐는 것. 어린 나이에 내가 그렇게 걷는 것을 내 스스로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 무슨 별 다른 이유가 나름으로 있었을리는 더더구나 만무하다. 어린 마음에 오히려 왜 나만 보고 그러지 하는 반감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좀 커서 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도 그런 말을 종종 나무람삼아 들은 걸 보니 내 걸음이 확실히 남들과 많이 다르기는 했나보다. 철이들고 커가면서 그런 말을 들을 때 내가 뭔가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바닥에 혹시 돈이라도 떨어져있을까 봐 그러고 다닙니다.” 내 대답이 이랬는데, 그때부터 내가 내 걸음걸이에 대한 일종의 합리화로 좀 유들유들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기야 우리 어릴 적에는 돈을 줍기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선창가를 헤저어 걸어다니고 했으니 별로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튼 지금도 내 걸음걸이는 여전히 그렇다. 허리는 구부정하고 머리는 땅을 향하고 있고 두 손도 거의 항상 호주머니에 있는 걸음걸이다. 바른 걸음걸이라는 게 있을 것인데, 그에 비하면 내 걸음걸이는 애시당초부터 틀린 것이었다. 그러니 고쳐지지 않는 꼴불견의 내 걸음걸이에 대한 나름의 자기합리화에 따른 유들함도 생겨났을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우습다. 

    오늘 아침, 동네를 흐르는 대장천 변을 걷다가 하마트면 길바닥에 쓰러질뻔 했다.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고 그냥 주저 앉는데 그쳤다. 역시 구부정한 허리에 눈은 땅을 향하는 예의 그런 자세로 나는 걷고있었다. 그렇게 걷고있는데, 머리 위 정수리 쪽에서 뭔가 강하게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 눈을 하늘 쪽으로 향했다. 맙소사, 그랬더니 거기에 웬 시커먼 구조물이 나를 향해 떨어지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 눈에는 그게 과장을 좀 보태 흡사 지옥의 계단 같은 모습이었다. 그 구조물들은 보여지는 내 눈높이에서만 머물러있질 않고 계속 이어지면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그러나 그 구조물은 나를 덮치지는 않았다. 그냥 나를 내려 누를듯 하는 상태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듯 했는데, 일종의 겁박을 주는 것 같기도 한 것이었다.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무엇때문에 그랬는지 잘 생각이 나질 않지만, 아무튼 무척 골치 아픈 일로 걱정과 근심을 마음 속에 주렁주렁 달고 살 때가 있었다. 그러니 자연 사람들과도 어울리질 않고 집이든 밖에서건 어디서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갖은 궁리를 해도 별다른 해결방안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니 술로 달래곤 하면서 혼자서 매일 무작정 싸돌아 다니는 게 일이었다. 그런다고 근심 걱정이 사라질리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아마 어떤 ‘파이널 솔루션’까지를 마음에 담가놓고 있지 않았던가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동네 인근의 호수공원 길을 걷고 있었다. 바탕이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한 생각의 한 가운데에서 그게 또 이런저런 생각, 생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구체적인 사안은 있는 근심, 걱정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근원적이고 철학적인대로까지 그 파장이 넓혀지고 있었는데, 왜 그랬겠는가. 결국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누가 내 머리를 잡아 위로 끄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땅바닥으로 향해있던 내 시선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 눈높이가 시선과 수평을 이루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 눈에 크고 우람한 나무 한 그루가 들어왔다. 나무는 가지에 싱싱하고 푸른 잎들이 무성했다. 문득 바람이 불었다. 그 나뭇잎들이 바람에 일제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내가 그 나뭇잎들의 팔랑거림에 시선을 더 가깝게 했을 때 그 나뭇잎들은 무수한 손질이 되어 나를 향해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눈높이를 조금 더 위로 했을 때 문득 휘감기듯 꽉 차게 눈에 들어오는 푸른 하늘, 그 하늘 또한 하나의 거대한 손짓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와 함께 나에게 다가온 게 있다. 바로 자유로움이었다. 걱정과 근심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맑고 시원한 청량한 자유, 그 자유로움이 내 머리 속을 꽉 차게 자리잡는 것이었다.

    나는 많이 걷는다. 일이 있어도 대개는 걸어다니고, 하릴없이 걷기도 한다. 내 구부정한 걸음걸이가 나에게 어떤 것인가를 걸음걸이가 알려주고 있는듯 하다. 울적할 적에 나를 더 울적하게 하는 게 땅을 보고 걷는 나의 걸음걸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이를 고쳐 서서이 고개를 들어올리며 걸을 노력을 의식적으로, 아주 의식적으로 하고있다. 고개를 바로 들었을 때, 눈높이의 시선으로 걸어가는 걸음마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 눈높이의 걸음으로 나는 마음이 편해지고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그러면서 시선을 위로 향하여 때때로 하늘을 보고 걷는 걸음도 익힐 것이다. 70 나이까지 함께 해 온 나의 걸음걸이라 잘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마음의 병을 걸음걸이로 더 키울 수는 없지 않은가.

     

    어머니도 그러셨다. 가끔씩 하늘을 보고 걸어라. 아니면 고개를 들어 최소한의 수평적인 눈높이 정도라도 하고 걸어라. 그래야 산다. 어머니 말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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