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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년의 백구두'
    즐거운 세상 2022. 5. 20. 14:59
    오늘 아침, 한 어르신 분이 흰색 ‘백구두’를 신고 나오셨다.
    고령이지만, 입성이 워낙 곱고 이채로워 시선을 많이 받으시는 분인데,
    오늘은 하얀 양복에 백구두 차림이라 단연 화제에 올랐다.
    요즘이야 누가 ‘백구두’를 신을 사람들이 있을란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여름날 멋쟁이의 상징이 바로 ‘백구두 신사’였다.
    물론 이에는 약간의 부정적인 시선도 없잖아 있기도 해 ‘백구두 신사’라는 호칭이
    그렇게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어르신 말씀으로는 이제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쓸 나이도 아닌데다,
    이런 신발, 이런 복장으로 다니는 게 편하다고 했다.
    아울러 이런 차림이 인생 황혼기, 다시 못올 전성시대를 다시 한번 만끽해보는 계기로의 느낌도 든다고 했다.
     
     
     
     
     
     
     
    말문을 여신 어르신이 내가 ‘백구두’를 지적하자 표정이 바뀐다. 젊은 시절의 그런 표정이랄까.
    그러면서 매고 다니는 백팩에서 다른 구두를 꺼내고는 바꿔 신는다. 이름하여 ‘댄스 구두’다.
    백구두를 신고 다니다, 춤을 출 때면 바꿔 신는 구두라 했다.
    ‘댄스 구두’는 과연 보기에 모양새가 제비처럼 날렵한 게 흑과 백 두 색의 조화가 묘하고 요상스러웠다.
     
     
     
     
     
     
    어르신은 왕년에 잘 나가는, 서울에서 알아주는 춤쟁이였다.
    그것도 교습소나 캬바레에서 익힌 댄스가 아니라, 정규 코스를 통해 교본으로 배운 춤이라고 했다.
    그 말에 내가 “그럼 ‘왕년의 백구두’였겠습니다”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교춤에 관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얘기를 펼쳐 나갔다.
    “나하고 손을 맞잡고 춤을 춘 여자가 한 4천 명 쯤 되지…”
    “춤추고 노느라 일년에 집 한채 값 정도 날렸제…” 등등
     
     
     
     
    더 이상 나가다간 얘기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갈 것 같아 얘기를 좀 저어하고 있는데도
    어르신의 얘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어르신의 얘기에 급기야 곁에서 듣고있던 할머니 한 분까지 거든다.
    미도파가 나오고 제기동이 나오고 246이 나오고 6이 나오고…
    미도파, 제기동은 예전 댄스 캬바레로 유명했던 곳이고 246과 6은 춤의 형태라는데,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두 분은 흥까지 곁들여가며 서로들 아주 익숙해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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