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먹으러 갔다가 대단한 글을 만났다.
日通淸話公 (일통청화공).
처음엔 日淸公通話로 읽었다.
무슨 뜻인가고 가까이서 봤더니
쓴 사람이 그 누구인가.
바로 安 重根 의사다.
'庚戌 3월'과 '旅順獄中',
그리고 安의사의 손바닥인 手掌印이 찍혀져 있다.
경술 3월 이면 1910년, 그러니까 安의사가 순국한 달이다.
뤼순(旅順)감옥 수감 중에 쓴 글인 것이다.
대단한 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글 뜻이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일청공통화(日淸公通話), 감이 올듯말듯 하다.
安의사가 수감 중에 구상하고 쓴 게 아시아평화와 관련된 글이니
日淸이면 혹 일본과 중국을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통화(通話)라는 글이 있으니 서로 얘기들을 잘 해보라는 뜻인가.
그러면 공(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같이있던 후배와 뜻을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뜻은 아닌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찾아 보니,
그렇게 읽는 게 아니었다.
세로로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日通淸話公이다. 뜻도 나와 있다.
"날마다 맑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분"이라는 뜻이란다.
글 쓴 배경을 알고보니 安의사가 참 대단한 분이라는 걸 실감케 한다.
뤼순감옥의 간수장인 기요타(淸田)에게 써 준 것인데,
기요타의 인간됨을 떠나 적장 히로부미를 죽인 자신을 가두고있는
적국 사람을 그런 식으로 칭송한 글이기 때문이다.
기요타는 安의사가 사형당하지 않도록 매일 기도했던 일본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安의사의 이 遺墨이 어떻게 해서 적선동의 그 식당에 걸려있는지 그 연유가 자뭇 궁금하다.
액자에 표구된 글은 다시 두터운 유리막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종업원에게 물었다. 이 글, 진본인가.
종업원은 보면 모르겠느냐며 그냥 웃는다.
하기야 安의사의 그 遺墨 맞은 편에 걸려있는 유화그림도 범상찮았다.
故 吳 승윤 화백의 그림이었다. 吳화백의 아버지가 바로 吳 지호 선생 아닌가.
또 뒤적여 보았더니,
安의사의 이 遺墨은 올해 1월 경매에 나왔던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기사는 경매 전에 쓰여진 것인데, 경매결과는 알 수가 없다.
경매 시작가가 1억원이었다는데, 과연 경매가 어떻게 끝났을까.
그 식당에 걸려있는 安의사의 글은 분명 경매에 나온 그 遺墨이다.
그러면 그 식당 사장이 낙찰을 받았다는 말인가.
아무렴 어떤가. 安의사의 遺墨을 본 것, 그 자체가 의미있는 일 아닌가.
앞으로 그 식당을 자주 가야겠고,
가거든 잠시나마라도 安의사와 安의사의 애국정신를 생각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순국하기 직전 뤼순감옥에서 쓴 글씨가 경매에 나왔다. 고미술품 경매사인 아이옥션(대표 공창규)은 18일 오후 5시 서울 경운동 전시장에서 여는 올해 첫 경매 행사 ‘장터’에 안 의사의 유묵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날마다 맑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분·사진)을 포함한 230여점이 출품된다고 10일 밝혔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이 2001년 발간한 ‘대한국인 안중근 사진과 유묵’에 실린 작품으로 시작가는 1억원이다. 가로 72㎝, 세로 41㎝ 크기의 비단에 먹으로 쓴 휘호의 오른쪽에는 기요타(淸田) 선생에게 증정한다는 내용이 있고, 왼쪽에는 ‘경술(1910) 삼월 뤼순감옥(旅順獄中)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謹拜)’라는 글과 함께 안 의사의 수장인(手掌印)이 찍혀 있다. 기요타는 뤼순감옥 간수과장으로 안 의사가 사형당하지 않도록 매일 기도하는 등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안 의사는 이듬해 3월 26일 순국할 때까지 뤼순감옥에 있으면서 일본인과 지인들에게 붓글씨를 써주었는데 현재 40여점이 발견됐다. 이 가운데 ‘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必有近憂·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필히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가 2008년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최고가인 5억50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국민일보 1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