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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배의 설악산 공룡능선, 그리고 나의 그 것
    세상사는 이야기 2022. 9. 13. 14:01



    추석 연휴에 설악산 공룡능선을 간 후배가 산행 사진들을 보내오고 있다. 한 마디 해줘야 할 것인데 뭐라해야 할까. 수고했다라는 말은 그냥 인사치례일 것이니, 그것으로는 내 감정이 닿지 않는다. 부럽다는 말이 목구녕까지는 차 오른다. 하지만 그 말은 내 처지에 비하자면 택도 없는 것이다. 여러 여건을 견줘 후배와 얼추 비슷하다면 할 수 있을 말이라는 자격지심에서다. 수고하고 고생하고 한껀했다는 이른바 공치사적인 것으로는 해줄 말이 퍼뜩 생각나지 않는 건 말하자면 말 이상의 것, 그러니까 beyond description이라 그런 것일까.
    후배에게 직접 하기는 좀 그렇지만, “끔찍하고 소름이 돋는다”는 말이 내 입 안에 머뭇거리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설악하고도 공룡을 생각하면 나는 무섭다. 그러니까 설악은 말하자면 이제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않는 무겁고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말이 맴돌고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룡을 처음 탄 게 1984년. 그때 과장을 좀 보태 죽을 뻔했다. 그리고 2010년인가 다시 공룡에 붙었다가 중도에 포기를 했다. 그만큼 나에게는 어려웠던 게 공룡능선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들이 한창 산을 탈 적에 설악의 레벨로 따진다면 공룡보다는 용아가 훨씬 어렵고 위험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용아장성은 그렇게 두렵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헌데 공룡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맥을 못 췄다. 한 20년 전 쯤인가, 옛 직장 선배 한 분이 공룡에서 화를 당했다. 그 이듬해 사고지점에 추모비를 세우기 위해 공룡을 가기로했으나 나는 당일 새벽에 나가질 못하고 빠졌다. 이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인데, 아무튼 나는 특히 그 후 공룡과는 이상한 관계가 됐다. 공룡을 굉장히 가고싶은데, 막상 붙으면 이런 저런 이유로 산행이 되질 않아 중도에 포기하곤 했던 것이다.




    설악을 가본지도 꽤 된다. 예전에는 틈만 나면 동부고속 팀과 함께 새벽에 오색에 내려 대청을 얼마나 오르내렸던가. 서북능선 종주를 포함해 설악의 오지를 찾아다니던 게 1980, 90년대다. 가장 근년에 설악에 오른 게 2010년이니 10여 년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올랐다라는 말은 쓰기가 싫다. 언젠가 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데, 과연 그게 이뤄질까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체력적으로도 이젠 안 된다는 걸 안다. 올해 한라산을 성판악에서 오르고 지리산을 종주하면서 기력이 쇠잔해졌음을 절감했다. 설악은 이 두 산보다 어렵고 힘든 산이다. 그러니 설악은 이제 나에겐 不可近 不可遠적인 대상이 됐다.


    (산행을 끝낸 후배가 설악의 품속에 길게 누워있다)



    설악 그것도 공룡을 타고 온 후배에게 해 줄 말이 아직도 잘 찾아지질 않는다. 한 마디하기는 해야겠으니 그냥 경상도 사람들이 하는 가장 보편적인 말로 하자.
    “욕 봤다!”
    한 마디 더 보태자.
    “내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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