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라디오, 그리고 '월칭 마틸다(Waltzing Mathilda)'
    컬 렉 션 2019. 6. 6. 13:40

    라디오를 좋아한다. 그것도 아날로그 식 라디오. 영상과 디지털시대에 웬 아날로그 라디오인가. 세상 살아가면서 세상사를 모르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니, 뭔가를 통해 아는 폼이나 내야 할 것인데, 그 매개체로 나는 라디오가 좋다는 말이다.

    나이 탓인가, 아무래도 보는 것은 피곤하고 그냥 눈 감고 듣는 게 좋다. 보기보다는 듣는 소리가 편하다는 얘기인데, 그게 디지털 음향처럼 탁탁 틔는 것보다 나긋나긋 감겨오는, 말하자면 멜랑꼬릴리한 소리가 좋아서 아날로그 라디오를 고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류의 라디오가 몇 개 있다. 잠자리 머리맡에는 50년대 텔레풍켄 스탠드 라디오가 있고, 거실 한 구석에는 진공관식 그룬디히 라디오가 놓여있다. 산책길에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는 소형 라디오도 몇 개 있다. 지금은 없지만, 단파를 듣기위해 단파라디오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VOA, BBC 등 익히 알려진 단파방송들과 간혹 모스크바방송도 듣기도 했다. 물론 한국어 방송이다.

    요즘도 이런 취향의 좋은 라디오를 보면 갖고 싶어 한다. 간혹 이베이(eBay) 서핑을 하곤 하는데, 이즈음 구하고 있는 것은 콘솔타입의 것으로, 라디오와 전축, 스피커를 함께 갖춘 것이다. 어쩌다 좋은 물건이 나오곤 하는데, 부피와 무게로 인한 그놈의 운송문제로 번번이 구매를 거절당한다. 밤에 백열등 스탠드아래 그 것으로 LP판을 듣고 싶다. 5, 60년대 그룬디히나 텔레풍켄 콘솔의 스피커는 참 좋다. 그 것으로 밤에 빌리 할러데이나 사라 본의 재즈를 듣고 싶다.

    옛날 중학교 다닐 적에 라디오를 좋아하는 어느 선생님의 라디오 예찬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 선생님도 라디오 듣기를 좋아했는데, 그 이유가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그 시절 미디어로서는 거의 유일한 게 라디오라서 그랬을 것이지만, 그 선생님은 좀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인류 마지막의 날에 함께 할 것이 라디오라고 했다. 영화 얘기에 덧붙여 한 얘기였는데, 대충 이런 내용의 영화다.

    미국과 소련 간에 핵전쟁이 터져 인류가 멸망의 시점에 와 있었다. 핵 낙진이 제일 늦게 떨어진다는 호주에 사람들이 몰린다. 핵 낙진의 공포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음을 매일 라디오를 통해 듣는다. 멸망을 앞둔 인간 군상의 온갖 모습이 연출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랑은 있고, 눈물도 있고, 이별도 있고...

    한참 후에 그 영화가 ‘그날이 오면’이라는 것을 알았다. ‘On the Beach'가 원제로, 그레고리 펙, 에바 가드너, 안소니 홉킨스가 나온 영화다.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1959년 작이다. 이 영화를 몇 번 봤는데, 그 때 선생님이 해 주신 얘기가 대충은 맞다. 라디오에 기를 기울이는, 멸망을 앞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라스트 신을 장식하는 것은 라디오가 아니라 모르스 전신기다. 그레고리 펙의 잠수함이 어디서부터인가에서 날아오는 모르스 전신신호를 마지막 희망으로 삼아, 말 그대로 마지막 항해에 나선다. 마침내 신호를 보내는 도시 근해에 도착한다. 그러나 신호는 사람 손에 의해 보내지는 것은 아니었다. 모르스 전신기에 걸린 커튼 줄이 바람에 걸려 저절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끝이다.

    라디오가 절망의 메신저였다면, 모르스 전신기는 희망의 등불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는 자신들이 쳐놓은 멸망의 그물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그 상황에 라디오가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면 주제가처럼 나오는 노래가 있다. 'Waltzing Mathilda'다. “월칭 마틸다, 월칭 마틸다...하고 부르는, 익히 잘 알려진 노래다. 해석은 쉽다. ‘왈츠를 추는 마틸다’ 아닌가. 그런데, 왜 이 노래가 이 영화의 주제곡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좀 더 뒤적거려 찾아봤다. 그랬더니 ‘Waltzing Mathilda'는 ’왈츠를 추는 마틸다‘가 아니라 ‘유랑’ 쯤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연유는 설명이 좀 길고 복잡하다. 아무튼 이 노래의 가사 중 ”You'll Come A Waltzing Mathilda With Me"가 많이 나오는데, “나와 함께 유랑의 길을 떠나자”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노래는 영화에 어울린다. 마지막을 앞둔 사람들이 마지막 길의 유랑을 떠나자는 것이니까. 이 노래에 담긴 뜻을 알고 ‘월칭 마틸다’를 들어보면 좀 슬프고 짠해진다.

    다시 라디오로 돌아오자.

    온갖 노래들이 많다. 그 중 좋아하는 노래들을 무엇을 통해 듣는 게 가장 편한가 하고 자문해본다. 답은 라디오다. 고성능 디지털 기기의 하이파이 스테레오도 그렇고 고화질 텔레비전도 좋지만, 나는 라디오가 가장 편하고 좋다. CD 플레이어를 통해 많이 듣기도 하지만, 판 갈아 끼고 하는 것 등이 성가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라디오를 켰는데,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 이를테면 이미자, 나훈아, 모짤트의 노래나 음악이 나오면 참 좋다.

    자정을 넘긴 시간 쯤, 잠이 올라치면 머리맡 라디오를 켠다. 밤 시간 대에는 무슨 내용이든 이야기 방송이 듣기에 편하다. 물론 조용한 음악방송도 간혹 좋아하는 노래나 음악이 나오면 문제다. 잠이 달아나 버리니까. 모를 일이다. 오늘 밤엔 어쩌면 ‘Waltzing Mathilda'가 한번 나올지.









    '컬 렉 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 책 살려내기  (0) 2019.06.12
    Vaga luna... 젊었을 적의 노래들  (0) 2019.06.08
    '기 생 충'  (0) 2019.06.02
    마산에서 돝섬(猪島)까지  (0) 2019.05.26
    '고래돝섬(猪島)' 가는 길에  (0) 2019.05.24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