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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대로 해도 좋다"세상사는 이야기 2019. 7. 21. 14:11
매월 한 차례 씩 만나는 친구들간의 모임이 있다. 장소와 시간 등 모임의 구체적인 주도는 매달 친구들간에 돌아가며 맡겨진다. 7월은 내 차례다. 십 수년간을 이어 온 모임이라, 친구들의 모임에 대한 생각과 기호, 식성 등의 속성은 어느 정도 안다. 따라서 그에 맞춰 장소와 먹을 메뉴 등을 정하면 된다. 우리들은 모두 시골 출신들이고 나이도 꽤 먹었다. 그러니 어떤 취향이라는 것은 별로 까다롭지가 않은 일반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들 나이에 맞는 토속적이면서도 구수한 분위기가 있는 장소를 택해 만나왔다.
그런데 요 몇 달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 내가 개인적인 이유로 한 차례 모임에 빠졌을 때 친구들끼리 뭔가 정한 게 있었던 모양인데, 그것은 모임 장소와 메뉴에 관한 것이었나 보다. 지난 5월인가 모임 장소는 광화문 통 모 호텔의 중식당이었다. 홍콩을 기반으로 한 프렌차이저 중식당이었는데 꽤 고급스런 집이었다. 나오는 음식들도 무게와 맛이 있었다. 나는 그러려니 했다. 매월 어떻게 같은 류의 식당만 갈 수 있겠는가. 어쩌다 한번 씩 이런 곳에서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6월 모임에도 또 그랬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인근의 근사한 와인하우스가 모임 장소였다. 나는 마침 또 그 때 불가피한 일이 생겨 6월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 7월 모임이 다가온 것이다.
모임 장소를 내가 정해야 하는데, 좀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친구들간에 모임 장소와 관련해 모종의 어떤 합의가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이도 먹을 만큼의 나이이고 또 그에 맞는 격도 격인 만큼 모임 장소를 좀 업그레이드하기로 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나도 그에 맞게 그런 집을 찾아 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은데, 나로서는 그게 좀 마뜩치 않은 것이다. 내가 마음에 두고있으면서 언젠가 친구들을 한번 데려가고자 하는 집은 있었다. 영등포구청 역 인근에 있는, 전라도 음식 전문의 식당이다. 그렇지만 친구들간에 모임 장소와 관련해 어떤 변화의 합의가 있다면 그걸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이걸 어떻게 해야할까하는 나름의 궁리가 좀 있었다. 결국 모임의 회장을 맡고있는 친구에게 의견을 구했다. 내 첫 물음이 좀 당돌했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물었다. 나는 7월 모임을 막걸리 집에서 하고 싶다. 그런데, 5, 6월 모임이 그렇고 그런 고상한 집들이었는데 그래도 괜찮은가. 회장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건 그달의 '유사'가 정하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정하면 우리들은 모두 따라야 한다. 회장의 대답을 명쾌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좀 찜찜한 생각이 잘 가시지 않았다. 결국 다른 친구 몇몇에게 견해를 물었다. 그들의 대답 또한 좋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홍어 삼합에 막걸리 한잔 하자는 친구도 있었다. 영등포 그 집에서 하자는데 별 이견은 없었다.
영등포 그 집에서 하기로 마음을 먹고, 어제 예약을 하려 그 집과 연락을 취하려 했다. 인터넷에 나와있는 번호로 전화를 했지만 받지를 않는다. 어제 하루 너댓 차례 전화를 했는데도 도무지 받지를 않는다. 꽤 유명한 곳이라 예약을 하지 않으면 내주 초 모임의 자리잡기가 수월치 않은 것은 분명하기에 속이 좀 탔다. 결국 어제 밤까지 연락이 닿지 않으니, 그냥 어디 예약하기 쉬운 적당한 곳으로 잡아버릴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름의 책임감 때문이다. 그 집을 가려면 방법은 하나다. 월요일날 직접 가서 예약을 하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그닥 멀지 않으니 도서관 나오면서 들리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그래서까지 해서 그 집을 꼭 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없잖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인 지금까지도 계속 그 문제로 궁리 중이다.
그러다 조금 전 마음을 다 잡아 정했다. 영등포 그 집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오락가락하는 마음에 결정구를 던진 건 어느 신문 '오늘의 운세'란의 나와 관련한 글귀 때문이다. 이렇게 적혀있다.
"소신대로 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