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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 랑'
    세상사는 이야기 2019. 6. 26. 07:41

    프로스타글란딘이란 물질이 있다. 인체 내에서 합성된 생리활성물질이다. 남녀 간의 성행위 시 자궁의 이완 및 수축을 돕는다. 이 물질은 ‘20세기의 역병’이라고 일컬어지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즉 에이즈(AIDS)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남녀간, 그러니까 異種간 사랑의 행위 시에는 유익한 물질이지만, 남자와 남자, 그러니까 同種간의 그것에서는 이상한 형태로 변한다. 말하자면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를 유발케 한다는 것이다.

    에이즈는 그래서 남성 동성애자들에서 주로 발병하는 병인 것이다. 이 학설이 나온 게 에이즈가 한창 창궐하던 1980년대 후반인데, 아직 이에 대한 원인이 규명됐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물론 과학적인 이론이 토대가 돼야겠지만, 이 학설은 신비함을 더한 상태에서 궁극적으로 무분별하고 비뚤어진 사랑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경고인 셈이다.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애정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사랑, 이른바 에로틱 러브의 행위 는 남녀 간에 이뤄지는 게 정상적이다. 동성애자들도 물론 서로 간에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른 사랑이 아니다. 쾌락만을 추구하는 비뚤어진 사랑일 뿐이다. 동성애의 역사도 길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 이래 그게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된 시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의 권리, 즉 인권이 존중되고 인권 가치의 개념이 다양해지면서 이들 동성애자들에 대한 시각도 훨씬 폭이 넓어지는 흐름이 있으나, 그렇다고 그들의 사랑이 온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지금도 여전히 동성애를 둘러싼 논란은 거세다. 인권 강화 측면에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배려의 시선이 좀 깊어지고 이에 따라 정책적인 차원에서 적잖은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찬반 여부와 관련해서는 팽팽한 긴장이 계속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쨌든 동성애를 보는 시선의 변화가 그동안 여러 각도에서 꾸준히 모색되어 온 것이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기억하기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 첫 단추는 국립국어원이 아니었던가 싶은데, 그게 2012년이다. 그 해 국립국어원에서 사랑의 뜻풀이와 관련해 기존의 가치와 개념을 수정한 것인데, 그 배경 바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배려였던 것이다. 즉 동성애자 같은 ‘性的소수자’를 배려하고 포용하는 차원에서 중성적 관점으로 그 내용을 고친 것이다.

    사랑과 함께 연인, 연애, 애인, 애정의 네 단어도 이런 내용으로 바꿨다. 개정내용인즉슨, 사랑의 경우 원래 뜻풀이인 ‘異性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을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꿨다. 연인, 연애, 애인, 애정의 풀이에 들어있는 ‘남녀’도 모두 ‘두 사람’으로 고쳤다고 한다. 언어가 시대의 흐름 및 세태의 변화를 반영하는 산물이란 점에서 이른바 ‘커밍아웃’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잖은 동성애자들을 배려하기 위한 개정으로 보여졌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회와 그 구성원 대다수가 신조와 원칙처럼 알고 있던 기존의 사랑의 개념을 여론수렴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바꿔버린 것은, 좀 심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사랑에 대한 쿠데타’的 전변이라는 여론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와 함께 수정 과정이라는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남녀학생 다섯 명이 청원을 했다는 것이고, 이를 국립국어원 안팎의 전문가 일곱 명의 심의를 통해 고쳤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졸속이라는 비판이 높았다. 사랑이 포괄하고 있는 의미가 얼마나 큰가. 이들 전문가들이 사랑 등의 개념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인데, 그걸 바꿔 야기될 사회적 파장과 후유증을 알고 있기나 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사랑은 가뭄 후에 내린 비로 초목이 소생하듯이, 우리의 전 존재가 새롭고 싱싱해지는 하나의 경험이다.” 버틀랜드 러셀의 말이다. 단서가 붙는다. “사랑 없는 성은 그렇지 않다. 사랑 없는 성행위에는 이런 것이 전혀 없다. 순간적인 쾌락이 끝나면 피로와 혐오만 남을 뿐이다.”

    동성애와 그를 바탕으로 한 '사랑'과 그 가치를 쾌도난마 식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한 판단은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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